제자인 이화여대 김미현(오른쪽) 교수가 스승인 연세대 유종호 석좌교수에게 묻는다. 이날 스승과 제자는‘문학의 황폐화’부터‘친일 연좌제’까지 문화와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스펙트럼의 대담을 나눴다.

요즘 들어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하소연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밤길을 더듬어갈 조그만 손전등을 드는 심정으로 ‘제자가 묻고 스승이 대답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칠순 안팎의 원로와 그에게서 배웠던 젊은 제자가 이 페이지에서 만나 이 시대를 살아갈 삶과 지혜를 나누게 될 것이다.

(편집자)

= 사회 전반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위기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으니까 오히려 위기 불감증에 걸릴 지경입니다. "위기를 말하는 자의 위기일 뿐"이라는 한 젊은 작가의 항변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 우리 터전에서 문학이 위기가 아닌 시대는 없었습니다. 하부구조 자체가 취약했으니까요. 풍요의 시대가 되었지만 거기 비례해서 문학이 번창하지 못하니까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그런 소리가 나오겠지요.

1930년, 40년대의 백석 시집 ‘사슴’이나 미당의 ‘화사집’은 겨우 100부를 찍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20세기의 명편들이 나왔습니다. 돈이 된다고 머리 싸매고 졸속 양산(量産)주의로 나가니까 도리어 문학이 황폐해지는 경향도 있어요.

= 문학 독자가 감소한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 몇 가지 이유를 추정할 수 있겠지요. 우선 문학 이외의 전문 분야 출판물이 많아져 독자가 분산되었어요. 또 전반적으로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목소리만 내려는 시대입니다. 최고 권력자로부터 철부지 네티즌에 이르기까지 자기만 옳다는 것이지요.

전자(電子) 민주주의 시대가 되어 겸허(謙虛)가 시민적 미덕이기를 그쳤어요. 모두 작품을 쓰고 또 제 동아리 것만 읽어요. 성(性) 개방 풍조가 확산되면서 성적 모험이 지적 모험을 대체했다고 보아야지요. 육체와 포르노와 인터넷이 상상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지요.

"문화 포퓰리즘, 독자 탓으로만 돌릴수 있나요"

"허드레가 주류로…언젠가 대가 치를겁니다"

▲김미현=그래도 그런 독자 탓만 하는 것도 무책임한 듯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처럼 허약해진 독자들과 함께 문학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죠. 보다 현실적으로 문학이라는 ‘생물(生物)’을 키워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의 문제는 경계해야죠. 정치적 포퓰리즘만큼 문화적 포퓰리즘의 위협도 상당히 심각하니까요.

▲유종호=정치 포퓰리즘과 문화 포퓰리즘은 손잡고 가는 것인데, 정치 포퓰리즘을 공격하는 한편으로 문화 포퓰리즘을 부추기는 현상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는 거지요.

모든 분야에서 키치(kitsch), 허드레 예술이 주류가 되어 가는 경향이 없지 않아요. 관중, 청중, 독자를 동원하기 위해서지요. 여기 가서 이 말 저기 가서 저 말 하는 선동적 정치적 수사(修辭) 같은 것도 최악의 정치적 키치지요. 독자나 청중 계도 기능을 포기하고 오로지 그 유치에만 골몰하는 한 언론이나 방송 매체는 스스로 키운 문화 포퓰리즘의 희생양이 되는 날이 올 겁니다.

▲김=도스토예프스키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의 질타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거군요. 하지만 이제는 ‘우열’보다는 ‘다양성’의 측면에서 두 작가에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루키의 소설도 우리 시대의 아우라를 잘 보여주는 면이 있으니까요. 혼내고 가르치려는 문학을 자학적으로 마냥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유=앤드루 마블(Andrew Marvell)의 시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에게 세상과 시간이 담뿍 있다면” 둘 다 읽어도 좋지요. 하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굳이 고른다면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겁니다.

강렬한 집중을 요구하는 작품이 헐렁한 작품보다 내구성이 강할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나 곧 싫증나는 ‘대중음악’보다는 반복적 향수(享受)에 값하는 ‘예술음악’을 권하고 싶어요.

▲김= 1990년대를 ‘뛰어난 군소 작가들의 시대’라고 평가한 글이 있더군요. 70점짜리 문학은 많아도 90점짜리 문학은 드물다는 생각에 저도 동의합니다.

▲유=지금 말한 그 ‘군소작가’ 중에서 대작가가 나오는 것 아닐까요? 처음부터 대작가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몇 십년 정진하다 보면 대작가가 되는 것이겠지요. 또 최상급의 대작가는 한 시대에 몇 사람 나오는 것이고요.

▲김=우리 사회나 문학의 밝은 미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요?

▲유=‘지역 감정’의 확대판인 심정적 민족주의와 명분소아병(名分小兒病)이 큰 문제라 생각해요. 병자호란의 수모와 참화를 자초한 것은 명분소아병자들의 융통성 없는 고집 때문이었어요.

모든 문제에서 실질과 실리를 따지는 합리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널뛰기처럼 요동이 심한 민심이나 한곳으로 우르르 쏠리는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의 앞날은 밝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지요.

옛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함석헌의 ‘사상계’ 기고문. 1958년 5월호)고 호소한 이가 있었죠. 지금도 유효한 말입니다. 덧붙인다면 “공부하며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해야겠지요.

▲김=지금의 우리 사회에 대해서 연만(年滿)한 세대일수록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 같습니다.

▲유종호=노파심이란 말이 있지요. 노파심은 노인들의 성인병이자 이데올로기란 측면이 있어요. 그러나 생의 대부분을 산 이들에게 고유한 허심탄회함의 발로란 측면도 있지요.

미국의 평화봉사단원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66년, 우리의 연평균 국민소득이 100달러이었을 때였어요. 데이비드 매캔이나 브루스 커밍스 같은 한국학 학자들이 초기 봉사단원 출신이지요. 시골이나 도회에서나 밤거리를 두려움 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어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택시 운전사도 밤거리가 무섭다고 할 지경이지요.

▲김=이상한 것은 사방에 나라 걱정하시는 분들밖에 없는데, 정작 나아지는 것은 별로 없다는 거죠. 단 한 권의 ‘징비록’은 있을 수 없겠지만 제대로 혼내는 ‘어른’이나 제대로 준비하게 해주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부재하는 ‘아마추어’의 사회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유=사회적 갈등은 심화되고 있는데 그것을 조정하려는 노력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겠지요. 위정자가 그것을 조장하는 측면까지 있어요. 후보 시절 현 대통령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요즘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황당한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정책 목표에는 장거리적인 것과 단거리적인 것이 있고 또 우선순위가 있지요. 그것이 뒤죽박죽이에요. ‘수도 이전’이나 ‘과거 청산’이 그렇게도 긴급한 당면과제입니까? 과거 청산이란 미명하에 누워서 침 뱉기에나 열을 내고 있어요.

▲김=누워서 침 뱉기라면?

▲유=역사란 후세가 기록하는 것입니다. 특정인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오랜 기간 영국 공산당원이었던 에릭 홉스봄도 “역사상 어느 사례 못지않은 산업적 성공사례인 남한”이라고 20세기 역사책에 적어 놓고 있어요. 개발시대의 근대화 노력 때문에 우리는 거대한 빈민굴로부터 탈출하여 평균수명도 높아지고 산림녹화에도 성공했어요.

이 개발시대의 지도자를 ‘독재자’나 ‘친일’이란 한마디로 매도하는 것은 균형 잡히지 않은 비역사적인 태도입니다. 상처 없는 영광이 어디 있으며 야만의 기록 아닌 문명의 기록이 어디 있습니까.

▲김=해묵은 논쟁일 텐데, 오십 보와 백 보 사이에 결과의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만 백 보에 도달하는 과정의 정당성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현실추수주의만큼 과거추수주의의 폐해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알고 나면 미워할 사람 하나도 없죠.

▲유=민주화 노력 과정에 고초를 겪은 이들에게 경의를 갖고 있고 심정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잘 닦아놓은 길을 걸어가며 길 닦은 공로자 욕설만 한다는 것은 역사의 일면만 보는 편벽된 착시(錯視)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빵도 자유도 주지 못한 한쪽 지도자에겐 깍듯이 경칭을 붙이면서 빵을 듬뿍 안겨준 지도자를 막말로 모욕하는 세대들의 난폭 운전에 황당한 느낌이 듭니다. 역사가 편가르기와 응원가로 오용되어선 곤란하지요.

▲김=국가나 민족 정체성 논의와 연관되어 한창 거론되고 있는 친일 문제에서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국문학사적 평가에서도 ‘뜨거운 감자’인 문제입니다만···.

▲유=간단히 얘기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과거 문제를 거론하자면 한이 없어요. 친일파를 논하자면 원인제공자인 조선 왕조 붕괴의 책임자도 거론해야죠.

연구 기관에서의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지요. 조선조 시대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현대판이 되는 정치적 판단 행위엔 반대합니다. 엄격히 적용하면 남아 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연좌제에 반대하던 이들이 친일 연좌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우습지요. 일관성이 있어야지요.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와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와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유 교수가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로, 김 교수가 이 대학의 국문과 학생으로 입학하며 처음 사제의 연을 맺었다.

김 교수는 “신입생 때 교수님으로부터 마틴 루서 킹의 연설문 강독을 듣는데 진지하게 학문의 길을 강조해서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할 때도 유 교수가 심사위원이었다”며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 들어섰을 때, 문학평론가로서 사회 첫발을 내디뎠을 때 모두 유 교수가 문을 열어 주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1935년 충주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대 영문과와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섬세한 언어감각과 균형 잡힌 시각의 문학평론가로서 평생 서정시를 연구했고, 대한민국 문학상, 대산문학상, 은관문화훈장, 인촌상 등을 받았으며, 예술원 회원이자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김미현 교수는 1966년 서울에서 출생해 이화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그의 평론은 한국 근현대 여성소설의 페미니즘 시학과 동시대 작가들의 실험적 경향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2003년 소천 비평문학상을 받았다. 계간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리=김미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