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시작된 세계 한인입양인대회에 참여한 입양인들은 내면의 상처를 서로 털어놓는 자리를 수시로 가졌다. 그 가운데에는 입양인을 아내로 맞은 남편들 모임도 있었다. 모임에 참여한 두 미국인의 ‘입양인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두살배기 키우며 시시콜콜 기록 앨범 24권, 디지털사진 1500장
▲로버트 브레이(29·로봇 엔지니어)
(미국 시애틀시 거주. 입양인인 아내 앰버 브레이(27)는 1979년 두 살 때 미국 워싱턴주 메이플밸리로 입양. 한국명 조명희.)
“우리 집에는 딸 아이의 기록들이 엄청나게 많다. 두 살밖에 안 됐는데 앨범이 24권이고 6시간짜리 비디오테이프가 16~17개 정도 된다. 아내는 병적으로 딸 아이의 모든 것을 기록해 주려고 했다. 목욕하는 장면, 밥 먹는 장면 등 시시콜콜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생각할 때는 뭐 ‘그런 것까지 다 찍느냐’ 싶을 정도의 일상적인 장면인데 굳이 찍어놓으라고 한다. 아내가 그러더라. ‘난 과거가 없어요.’ 한국에서의 내 어릴 적 모습이 없다는 얘기였다.
‘당신은 입양아가 아니니까 내 마음을 몰라’ 하는 아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 둘 사이에 알지 못하는 벽(wall)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 마음 깊은 곳에 다가갈 수 없어 힘들었다.
이젠 이해한다. 참, 인화하지 못한 아이의 디지털 사진도 컴퓨터에 1500장 정도 있다. 우리집 주차장에는 아이가 쓰던 물건도 차곡차곡 보관돼 있다. 3개월 때, 6개월 때, 한 살 때 쓴 장난감 등이 정리돼 있다. 대단하지 않나?
이번 기회를 통해 입양아 출신 아내를 둔 다른 남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 혼자만 가슴에 담아둔 고민들도 많았는데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동지를 많이 얻은 것 같아 기쁘다.
지금은 아이가 하나지만 농담을 섞어 능력이 된다면 한 12명쯤 입양하고 싶다. 아내는 꼭 한국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그 아이를 우리 친자식처럼 차별 없이 키울 자신이 있다.
물론 아이들끼리 부모 사랑을 더 받으려고 싸우는 것까지야 말릴 수 없지 않겠나? 사실 입양은 경제적인 능력이 많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가정을 사랑하고 아이들 키우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편지있는 양부모 집 팔릴때 2600㎞ 마다않고 트럭에 싣고와
▲루이스 페레즈(41·공무원)
(미국 플로리다주 타마락 거주. 입양인인 아내 섀넌 페레즈(43)는 일련번호 ‘#8743’이란 숫자 외에는 아무 기록 없이 네브래스카주로 입양. 한국명 정선영.)
“결혼하고 한동안 한국 뉴스만 나오면 아내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요동쳤다. 아내는 박수를 치며 기뻐하다가 일순 침울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아내는 11세 때 입양됐다. 그래서 예전 기억을 많이 갖고 있다. 아내는 항상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힘들어했다. 아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부모를 찾는 것이다. 그걸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것이 남편들의 소망 아닌가.
아내는 물건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어떤 이유를 붙여서든지 버리지 않고 챙겨둔다. 나도 물건을 버릴 때는 꼭 물어보고 내놓아야 한다. 안 그러면 혼난다.(웃음) 집에는 아내가 어릴 적부터 모아온 각종 기록들을 보관하는 방이 있다. 사진, 편지부터 무슨 용도에 쓰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자잘한 것까지 가득하다. 아내는 내가 손도 못 대게 한다.
반년 전 네브래스카주에 사는 양부모가 양로원에 들어가면서 집을 내놨다. 집에는 아내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었다. 아내는 친구를 시켜 네브래스카에서 플로리다까지 트럭에다 물건을 모두 담아왔다. 세상에. 이번에(입양인대회에서) 다른 남편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들이 대부분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같이 자라면서 아내가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찾고 싶어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해 함께 상상했다.
아내는 ‘매우 강한(too stron g)’ 사람이다. 어린 시절 홀로 많은 고통과 싸워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강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아내와 함께라면 간단히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아내가 자랑스럽고 때론 좀 무섭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