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쎄요. 철쑤네 집입미까. 철쑤 바꿔 주씹시오. 다씨 걸겠씁미다.”
경기 안산시 사동 ‘고향마을’ 아파트 주차장에는 요즘 아이들이 한글 읽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우리 친구 한국’이라는 이름의 한글교실이다. 직사광선을 막아줄 천막 2동과 더운 바람 나오는 대형 선풍기가 교실의 전부다.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됐다가 영주귀국한 1·2세대들이 살고 있는 ‘고향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찾아 방학 중 한국을 찾은 사할린 동포 3·4세의 수업이다.
일본 적십자사로부터 배상을 받아 고향마을이 만들어진 것이 지난 2000년. 현재 480가구, 870여명이 산다. 평균 연령 74세. 대부분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 지원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지만 고향마을은 아직 사할린에 남은 한인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고향’이다. 사할린에서 고향마을 입주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동포 1·2세가 3000명을 넘는다.
경남 창녕에서 세 살 때 사할린으로 간 하옥자(66) 할머니는 평생을 줄곧 공장에서 재봉일을 하며 살았다. 4년 전 고향마을로 옮기고 나서야 재봉틀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일제 때 사할린으로 간 사람으로 영주귀국 대상자를 한정시켰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한국으로 올 수는 없었다. 아들 가족은 사할린에 남겨둬야 했다. 하씨는 “다행히 고향나라로 돌아왔지만 다시 이산가족이 된 셈”이라며 “여름방학 때면 찾아오는 손자를 보는 것이 하나뿐인 낙”이라고 했다.
하씨의 손자인 김남철(13)군처럼 사할린에서 수십명의 아이들이 고향집 찾듯 고향마을을 찾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고향’에 와서도 겉돌 수밖에 없다. 얼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만 많을 뿐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거리에는 한글간판이 홍수지만 읽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PC방에서 러시아 친구들과 채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이런 3·4세를 위해 동포 1세 어르신들의 건강진단과 생활상담을 맡아 오던 아파트 단지 내 사할린동포복지지원센터가 나섰다. 말 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한글교실’을 만들었다. 올해로 네 번째다. 첫회 때는 20여명을 가르치던 작은 규모였지만, 지금은 80여명으로 늘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온 주미미(14)양은 “6월 초 한국에 와 한 달 동안 방 안에서만 지냈다”며 “한글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손녀 미미양의 한국말이 또렷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최순분(69) 할머니는 “미미가 높임말로 아침 문안인사를 할 때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것이 맞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며 웃었다.
한글교실 학생은 4개 반 80명. 아파트 1층 주민 휴식처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교실로 만들었지만 공간이 모자라 1개 반 20명의 어린이는 땡볕 천막 속에서 공부를 한다. 비라도 오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자동차를 가진 집이 거의 없어 주차장은 늘 비어 있다. 지원센터 이원형씨는 “쾌적한 곳에서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아이들이 많아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한글 수업은 자원봉사자 4명이 맡는다.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나 일반 직장인이다. 직장인 교사 김은미(여·26)씨는 며칠 전 뙤약볕 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몸져 눕기도 했다. 김씨는 “전화를 받을 때 ‘여보세요라고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면, ‘다른 말로 전화를 받으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는 아이들 앞에서 아플 틈도 없다”고 말했다.
한글뿐 아니다. 오후에는 주위 태권도학원에 부탁해 태권도도 배우고, 교회에서 우리 노래도 함께 부른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레크리에이션과 무용을 배우는 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손비카(10)양은 “여기서 배운 ‘오빠생각’ ‘개구리와 올챙이’ 같은 동요는 사할린에서도 금세 히트곡이 된다”며 웃었다. 초대해 주는 곳도 꽤 생겼다. 놀이동산도 가고, 공장도 간다.
‘고향마을’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이주희(74) 할머니는 “할머니집이랍시고 찾아온 아이들이 수퍼 앞 작은 오락기 앞에 붙어 하루종일 오락만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웠는데 우리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너무 좋다”고 했다. 한글학교는 오는 13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