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의 조각으로 '생각하는 사람' 하면 로댕의 작품을 연상할 것이다. 동양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생각하는 부처님, 곧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드는데, 이는 허리를 약간 숙였을 뿐이지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앞으로 쓰러지는 전신을 건장한 오른팔로 버티고 있다. 어찌나 무겁고 힘든 생각인지 그를 지탱하는 데 온몸의 근육이 부푼 채 굳어있어 사유의 가혹함에 섬뜩해진다.
희랍 이래의 서양 조각들에서 완전히 초극하지 못한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냄새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은 철학자 야스퍼스였다. 그 야스퍼스가 반가사유상을 보고 "그것은 지상에 있어 모든 시간적인 것의 속박으로부터 초월해서 얻어지는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가장 원만하며 가장 영원한 사유의 모습이다"라며, 수십년간 철학자로서 볼 것 보고 생각할 것 생각해왔지만 이만큼 인간 실존의 참다운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삼국시대에 한반도에서 건너가 지금 일본 국보 제1호로 교토 고류사(廣隆寺)에 안치된 반가사유상을 보고 남긴 말이다.
이 사유상의 본이 되었던 삼국시대 26체 가운데 금동으로 만든, 가장 사유의 오묘함을 구현한 국보 78호, 83호 두 반가사유상이 옮아가는 중앙박물관의 고별 특별전시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 발을 무릎에 걸치고 한 손가락을 볼에 가볍게 댄 자유로운 사유 자세를 한 이 부처님은 56억7000만년 뒤의 미래에 이 세상에 나타나 석가모니께서 못다 한 중생구제를 자임할, 불교에서 유일한 미래불로, 도솔천(兜率天)에서 그 모습으로 인간 세계의 울고불고 외치고 비명을 지르고 통곡하는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한반도에 건너온 길목인 인도 간다라에 3세기 후반의 사유상이 있고 5세기 후반의 윈강(雲崗) 석굴에 중국 최고(最古)의 사유상이 있는데, 6세기에 들어 이 사유상이 백제에 들어와 미륵신앙의 온상이 되었고 신라에 들어가 화랑사상의 온상으로 한국화했다. 곧 반가사유사상은 한반도에서 곰삭아 우리의 피와 살과 생각이 되어 돌고 있는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