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동남아 국가에서 200여명의 탈북자들이 한꺼번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28일에는 이보다 더 많은 250여명이 들어온다. 정부는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해당 국가와 비밀리에 협상을 벌였다. 우리 정부의 탈북자 정책은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을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통해 데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동남아, 러시아 극동 지역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규모는 ‘조용한 외교’로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탈북자 지원단체들은 30만~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고 유엔도 10만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추정치는 3만~5만명으로 이들 중 1년에 한국행에 성공하는 탈북자는 아직 2000명이 안 된다. 90%가 넘는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원들의 추적을 피해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알지만 드러내놓고 탈북자들을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탈북자에 대해 두 가지 방향에서 처리하고 있다. 국제적 이목 등을 의식해 일부 탈북자들의 한국과 제3국 행에 대해 묵인하는 한편, 수시로 탈북자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조용한 외교’ 방식으로 탈북자들을 데려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동남아 3국에서 27일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 서울공항에서 모처로 이동하기 위해 탄 버스 안에서 커튼사이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채승우기자 <a href=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7/200407270175.html>▶ "탈북자 200여명 입국 [화보]]"<

중국 공안을 피해 일부 탈북자들은 동남아와 몽골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도 자신들이 탈북자들의 한국행 루트가 되는 것은 기피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국가에서도 조용한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 정부의 ‘조용한 외교’는 결국 이번처럼 집단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외국 공관의 담을 넘거나 하는 등으로 사건화되면 그들을 비밀협상을 통해 국내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 지원단체들은 “이제 정부가 그동안의 소극적 외교보다 적극적으로 탈북자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제기한다. 한 관계자는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유엔 등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에 난민 캠프나 보호소 등의 설치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 관리들도 한국정부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치안유지상 탈북자 북송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난 2002년 6월 중국 베이지 주재 한국 홍영사관에 탈북자 9명이 진입해 한국행을 요구한 직후 한국행 비자를 받기 위해 서있는 중국인과 재중동포를 행렬 옆에서 중국인 근로자들이 철조망을 치고 있다.

정부의 조용한 외교는 북한 당국을 의식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와 유사한 분단국가였던 서독은 49년 분단 이후 통일될 때까지 500만명의 동독 주민들을 받아들였다.

정부 당국자들은 “실제로 탈북자 수만명의 입국이 이뤄질 때 우리 국민이 그것으로 인해 생길 각종 사회 문제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도 묻는다. 우리 국민들의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지금의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 부지를 찾으면서 정부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하나원 인근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고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 수는 곧 1만명을 넘어선다. 대량 탈북·입국에 대한 압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이번 450여명의 집단 입국은 그 서막에 불과할 수 있다. 탈북자 대량 입국에 대비한 난민촌 건설이나 수용시설 확충, 취업교육 등 독일의 사례를 잘 적용해 수만명 탈북자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정부와 우리 사회 모두 탈북자 문제를 이대로 끌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책 전환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강철환 기자

▲1968년 평양 출생 ▲1977년 할아버지의 숙청으로 9세 때 함경북도 요덕 정치범수용소 수감 ▲1987년 10년 만에 수용소 석방 ▲1992년 탈북 ▲1997년 한양대학교 졸업 후 한국전력 3년 근무 ▲현재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