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환 중앙대 명예교수 행정학

‘신행정수도 건설 사업’이 추구하는 정책 목표는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의 촉진이다. 이 두 가지 정책 목표는 옳은 것이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수도이전 사업을 선택한 것은 잘못이다.

수도이전 사업은 이 정부의 최우선 국정 목표인 ‘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한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의 바탕이 될 서울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오히려 저해하며, 통일의 촉진 노력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과밀을 억제하고 국가 균형발전 전략을 실질적으로 선도하면서도, 서울과 나라의 국제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보다 효과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대안 중의 하나는, 서울에 밀집해 있는 명문대학들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먼저 서울대부터 충청도의 어느 지방으로 이전, 교수와 학생이 24시간 학문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 구조로서의 ‘대학도시(University Town)’를 건설하는 것은 이 정책의 좋은 출발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지방 캠퍼스를 만들기 시작한 사립대학들도 그 시범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행정관청 이전으로 옮겨 갈 2만명 남짓한 공무원보다 몇십 배 더 많은 인구 분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경쟁력 향상에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는 고등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서울에 몰려 있는 대학들은 땅값이 비싸 기숙사를 지을 엄두를 못 낸다. 학생 대부분이 매일 2~3시간씩 버스에 시달리면서 통학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기숙사에서 하루 18시간씩 4~8년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 하버드나 옥스퍼드 대학생들과 어떻게 경쟁이 될 수 있겠는가.

대학 이전 효과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방으로 옮겨진 명문 대학이 있어야 학·연·산이 협력하는 ‘지역 혁신 시스템’을 일으킬 수 있고, 지방에 터전을 둔 연구·개발 능력이 증진되어야 비로소 실질적인 국가 균형 발전 정책도 추진될 수 있다. 광주나 원주에 제2, 제3의 ‘대덕밸리’를 발전시켜서 지역 안에서 키워낸 성장 동력으로 첨단 산업을 일으켜,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시민들이 자기 고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서울로 몰려들 까닭이 없다.

그러나 국가 균형발전 전략의 추진에는 너무 성급하거나 지나친 정치적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흔히 ‘과학·기술의 수도’라고 불리는 ‘대덕밸리’(대덕 과학·산업 연구단지)가 KAIST를 비롯한 16개의 대학, 42개의 연구소, 1만6000명의 연구원을 거느리면서, 900개쯤의 첨단 기업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 능력’을 비축할 수 있기까지는, 1973년 이래 6개의 정권, 30년이 넘는 시일에 걸쳐 3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서 얻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방으로 이전해가는 대학으로 하여금 먼저 세계적 수준으로 특화해나가고자 하는 교육·연구 분야를 설정하게 하고, 이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책 연구기관 및 관련 공공기관을 엄선해서, 3~4개의 학·연 단지를 조성하는 일에 최소 15년쯤의 시간과 단지당 최소 20조원쯤의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라야 서울의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 정책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한영환 중앙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