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막중 서울대교수 도시계획학

주요 국책사업, 公論化 필요

수도이전 논란이 정치적으로 변질돼, 이 문제를 이성과 합리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 감정과 신경질적 대응이 앞서고, 온갖 험한 말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상황이 안타깝다. 수도이전 논란은 궁극적으로 정치권에서 해결해줘야 할 사안이지만, 처음부터 이 문제를 정략적 차원에서 이용해 온 여야(與野) 정치권이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국민투표도 하나의 대안이지만, 이 문제가 또다시 지역정치의 낡은 도구로 전락해 국론분열의 후유증만 남길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수도이전 찬성론자나 반대론자 모두 낙후된 비수도권을 발전시키자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양측의 차이는 방법론에 있다. 찬성론자들은 수도이전이 비수도권 발전에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수도권과 인접한 충청권으로의 수도이전은 오히려 국토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므로 지방분권과 비수도권에 대한 직접 투자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반론한다. 결국 수도이전 논란은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이라는 방법론 차원의 문제로 귀착된다.

방법론적 수단의 차이는 합리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순리이지,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결론을 내리기 앞서 문제 해결을 위한 선행조건으로서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다. 수도이전 논란을 정치적·사회적 이념의 문제로 확대시켜, 개혁과 반개혁, 기득권의 유무, 정권퇴진 운동 등의 수사(修辭)로 포장한다면 근본적으로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편가르기식 대립을 지양하고 비수도권 지역 발전을 위한 생산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범국민적 합의기구라는 공론의 장(場)을 만들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범국민적 합의기구에는 도시계획·토목·건축 등 신도시 건설 분야뿐 아니라, 정치·외교·국방·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각계 원로들이 폭넓게 참여해야 한다.
여기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범국민적 합의기구가 결정하도록 할 수 있다. 정부가 새로운 범국민적 합의기구 설치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면, 최소한 현재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의 성격과 기능을 수도이전 문제 자체를 검토하기 위한 기구로 개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이전처럼 우리 사회에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대선공약 중 하나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金大中) 후보가 제기했던 그린벨트 해제 공약이다.

이후 김 대통령은 그린벨트 제도개선협의회라는 범국민적 합의기구를 구성,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를 비롯하여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켰다. 협의회는 지루하리만큼 오랜 기간 폭넓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로 당초 공약과는 달리 전국의 그린벨트를 모두 해제하지는 않는 선에서 합의를 이루어냈다. 합의 결과는 현재 그린벨트의 구역 조정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그린벨트 해제보다 더욱 중차대한 수도이전 문제에 대해 범국민적 합의기구를 구성하고, 이 기구에 국민의견 수렴과 조정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나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 등 진행 중이던 다른 국책사업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는 마당에, 수도이전에 대한 범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구태여 외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