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작가 귀여니의 소설 두 편, ‘늑대의 유혹’(감독 김태균)과 ‘그 놈은 멋있었다(감독 이환경)’가 영화로 옷을 바꿔 입고 23일 같은 날 개봉한다.
한글파괴, 과도한 이모티콘 사용 등 작가에 대한 비판이 적잖지만, 영화계는 귀여니 소설을 원한다. 영화로 매체를 바꾼 ‘귀여니 신드롬’의 실체는 과연 뭘까. 놀라운 것은 이 영화 두 편의 스토리가 전형적인 신데렐라스토리와 최루성 멜로 드라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형식이야 어떠하든, 관객이 원하는 이야기의 ‘원형’은 어떤 형태로든 ‘유전’되게 마련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신세대 판타지 로맨스 역시, 구세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영화
〈늑대의 유혹〉 시골서 상경한 순둥이, 정한경(이청아)을 여자친구로 찍은, ‘짱’ 반해원(조한선). 그의 경쟁자 정태성(강동원)도 “누나, 나 기억 안나요”라며 그녀에게 접근. 두 남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 한경. 둘 사이에는 태생의 비밀이 있었으니, 태성은 한경의 숨겨진 이복동생. 태성은 “누나를 알게 된 걸 저주한다”며 괴로워한다.
〈그놈은 멋있었다〉 ‘짱’ 지은성(송승헌)의 글에 악성리플을 달았다 시달리게 된 예원(정다빈). 예원은 지은성을 피해 담을 넘다 밑에서 기다리던 은성과 입을 맞추고, 이때부터 지은성은 예원에게 여자친구가 돼라고 명령한다. 역시 은성에게도 비밀이 있으니, 아버지가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원작대로 욕설과 엽기적 신세대어가 많은 생생고딩용.
■싸가지 없는 왕자들
어느 날 잘난 ‘짱’들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다. 물론 그것이 ‘필연’이라는 것이 나중에 ‘반전’처럼 밝혀지지만, 우연히 얽히게 된 꽃미남, 그것도 두 꽃미남의 구애를 동시에 받는 설정은 여학생들을 대리만족시키는 설정. 이 왕자들은 성격이 매우 고약하여 무조건 ‘찍은’ 여자는 여자친구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토끼면 죽는다”, “죽을래” 등 협박과 강압을 일삼는 ‘싸가지 없는’ 남자들이다. 부잣집의 싹수없는 아들 설정은 영화로 만들어진 인터넷 소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도 핵심 키워드였다. 신세대의 판타지를 구성하는 것은 ‘다 있는데 싸가지만 없는 왕자님’이다.
■백치미의 미덕
“너 맞을 일 있을 때, 대신 맞을게”(태성을 구하고 엄청나게 맞은 해원에게 한경이 미안해하면서), “98, 99, 100”(지은성이 엄청난 싸움을 벌이며 예원에게 ‘넌, 1000까지 세고 있어’라고 명령하자).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 엄청난 두 왕자의 사랑을 받는 두 여주인공은 특히 ‘성적(性的)’으로도 매우 순진하고 잘난 남자친구를 사귀려는 욕망도 없다. 물론 멋진 왕자와 사귀는 것을 처음엔 거부해야 한다. 두 주인공은 모두 ‘순진한 못난이 인형’ 타입이다. 한마디로 ‘캔디’로 시작된 80년대 로맨스 만화의 정서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휴대전화에 목숨건다
“문자 씹으면 죽구, 전화 안 받으면 더더욱 죽는다.”(늑대) 영화에서 인연을 만들고 사건을 만드는 것은 휴대전화다. 아이들은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경쟁자를 이간하고, 사랑을 훼방놓는다. 휴대전화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니 영화적 화면(미장센)에도 파격이 생긴다. ‘놈’에서 예원이 지은성의 ‘나와라. 토끼면 죽는다’는 내용의 협박 메시지를 받는 대목. 글자들이 튀어나와 예원의 목을 조른다.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서의 ‘자기 확인’의 과정이란 바로 이 점에 있다. 이런 형식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은 ‘그놈’. 반면 ‘늑대’는 비교적 원작의 이야기 틀만을 가져온 느낌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