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작가

일본의 국민작가로서 나쓰메 소세키(1867~1916·사진)의 문학은 근대정신의 한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은 일본인들에게 가장 쓰임새가 많은 천 엔 지폐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그의 문학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변함없는 애정에 기인하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하여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E 사이덴스티커는, 나쓰메 소세키가 ‘우미인초’에서 ‘일루미네이션’에 빗대어 근대의 속도에 마비된 메이지 문명의 정신을 포착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근대문명의 음영을 통찰하고 있었던 소세키의 의식이 그의 문학 속에 투영되어 있음을 사이덴스티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3부작으로 알려진 ‘산시로’, ‘그 후’, ‘문’을 비롯하여 ‘한눈 팔기’, ‘행인’, ‘마음’, ‘명암’ 등에 이르기까지 회의적이며 내향적인 인물들을 그리고 있는 소세키의 주요 장편들은 근대문명의 휘황한 불빛에서 비켜선 고뇌에 찬 인물들의 실존과 불안 심리를 그리고 있는 정밀화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근대 정신의 입구이자 출구로서 소세키의 문학은 그가 살았던 메이지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에도 여전히 인간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며 독자들의 의식을 낯설게 만들고 있다.

‘몽십야’에 실린 중단편 스물네 편은 소세키가 본격적으로 장편 창작에 몰두하기 이전에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록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표제작인 ‘몽십야’는 첫 번째 밤부터 열 번째 밤까지의 꿈과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로, 삶과 죽음 혹은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벌어지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펼쳐보이고 있다. ‘문조’는 무료한 사념의 세계에 사로잡혀 일상을 소일하는 ‘나’에게 제자가 길러 보라고 권유한 새에 대한 작가 특유의 섬세한 관찰의 묘미를 보여준다. 긴 봄날의 일상적 체험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일소품’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런던 유학 체험들을 25편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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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십야’에 실린 작품들 가운데에는 소세키가 영국 유학 시절 방문했던 런던의 명소들에 관한 체험들이 흥미롭다. ‘런던탑’, ‘칼라일 박물관’, ‘런던 소식’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인데, 문부성의 제1회 국비유학생으로 2년간 영국에 머물며 겪었던 여러 체험들을 영문학도의 해박하고 예리한 감각으로 해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중편 ‘회상’은 평생 소세키를 괴롭혔던 위궤양을 치료하기 위해 슈젠사에서 요양을 하던 중 인사불성의 위독 상태에 빠져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이른바 ‘슈젠사 대환(大患)’ 사건을 서술하고 있는 작품이다. 문체와 권태와 예술의 가치, 아이러니에 관한 소세키 자신의 사상이 응축되면서 인생과 죽음에 대한 관조를 드러내고 있다. ‘회상’이라는 다소 밋밋한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중편은 아마도 소세키 문학에 저류하는 정신의 본질과, 향후에 산출될 장편 세계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되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이 전집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만한(滿韓) 이곳저곳’으로, 소세키의 절친한 친구이자 남만철도회사(‘만철’)의 총재 나카무라 제코의 초대로 한 달 반 동안 만주와 한국을 여행한 후에 쓴 기행문 형식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소세키는 만주·조선에 대한 둔감하고 무지한 태도와 비하적 시선,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에 대한 비판 의식의 결여를 보여주고 있는데, ‘취미의 유전’에서 보여준 염전사상과는 달리 한국과 중국의 독자들로서 이 점에 대해서는 비판의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성수 교수

최근 몇 년 사이 소세키의 주요 장편을 비롯한 주요 저작들이 많이 번역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두꺼운 분량으로 소개된 ‘몽십야’에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그동안 번역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소세키의 해박한 영문학 지식이나, 당시의 서양 사정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에서 표출된 여러 인명들에 대한 상세한 역주, 한시나 하이쿠에 대한 정밀한 번역, 또한 유려하게 읽히는 번역자의 문장이 소세키 특유의 건조하고 단조로운 문체를 걸림 없이 읽게 해주고 있다.

(김성수 연세대교수·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