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정략과 계산, 말이 벌써부터 판친다. 신행정수도 문제, 친일진상규명법 등 정가의 핵심 쟁점이 모두 대선과 연결돼 있다.
정동영 김근태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차기 대권주자들은 각각 여야의 공격 표적이 돼 있다. 선거는 3년 반이나 남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지금처럼 대권을 의식한 격렬한 공방을 벌이는 건 전례없는 일이다. 마치 대선 전야(前夜) 같은 살벌한 풍경이 매일같이 펼쳐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통일부장관에, 김근태 전 원내대표를 복지부장관에 각각 임명했다. 여권 핵심 인사들은 이를 “차기 주자 두 사람이 내각에서 대권 수업을 받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야당은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김 장관이 입각하면서 “과천에 출장다녀오겠다”고 말한 부분을 지적하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여권이 행정수도 이전을 밀어붙이려는 것도, 야당이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하는 것도 다음 대선에서의 ‘충청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침묵하고 있는 당 지도부와 달리 한나라당 소속인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는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 지사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번 국정과제 보고회 때 노 대통령이 ‘충청도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충청도는 숫자는 적지만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며 충청표를 보고 수도이전을 한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필요하다면 수도이전을 놓고 노 대통령과 TV공개토론을 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13일 의원총회에서 “대선이 앞으로 1250일 남았는데 이 시장, 손 지사는 연일 여당과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수도권 주민의 공포심을 이용해 자기 표로 집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손 지사에게 한마디하겠다. 당신의 상대는 대통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경기도당 위원장인 나 유시민이다”라고 반격했다.
서울시청 주변에선 “청계천 복원과 교통체계 개편은 이 시장이 대권으로 가기 위해 놓는 디딤돌”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이중 교통체계 개편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열린우리당은 연일 이 시장을 맹비난하고 있다. “70년대 개발 독재의 유령” “서울을 망친다” “시정을 농단한다”(이미경 의원·9일 국회대정부질문)는 거친 말이 쏟아진다.
열린우리당의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노리고 있다. 이 역시 다음 대선을 대비한 포석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