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친구들이 신분을 숨기고 싶어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언제까지 주변인으로 살 건가요.”

중앙대 법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문해성(21)군과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1학년 김연화(21)양. 동갑내기인 이들은 탈북 청소년이지만 ‘북한 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억양과 말투, 남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 등을 보면 영락없이 ‘서울 사람’이다. 문군은 2학기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할 계획이고, 김양은 교수를 꿈꾸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여느 탈북 청소년이 겪었던 마음고생이나 고통을 겪지 않은 건 아니다. 행운이라면 어머니와 형제가 함께 왔다는 정도.

황해도 재령 출신인 문군은 1998년 1월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1년7개월 가량 지내다 어머니, 두 형과 함께 남한에 들어왔다. 문군은 이듬해 충남 금산의 한 중학교에 1학년으로 편입했다. 17살이었지만 ‘학력 공백’으로 인해 서너 살 어린 동생들과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학교에 들어갈 때 담당 경찰관이 “잘 부탁한다”고 해서인지 학교 선생님들이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대해줘 난감했다고 한다. “숙제를 안 해가면 저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때리질 못해요. 그래서 숙제 안 해온 애들은 저보고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어요. 그땐 마치 대통령 아들이었다니까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1년 만에 통일부와 교육청 등에 통사정을 해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전학왔다. 다른 탈북 청소년들이 어떻게든 북한 출신이라는 ‘비밀’을 지키려고 하는 데 비해 문군은 처음부터 급우들에게 북한 출신이란 걸 밝혔다. “선생님도 처음 체벌을 가할 때 당황한 표정으로 ‘봐주고 싶은데 어쩔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하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께 ‘다른 애들과 똑같이 대해 달라’고 했어요.” 이후 문군은 특별한 학생에서 보통 학생이 됐고 학교 생활도 편해졌다고 한다.

“법조계에 진출,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을 위해 일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그는 “이건 꼭 써 달라”고 주문했다. “탈북자들은 ‘혹시 연변에서 왔느냐고만 해도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고 하는데 왜 감추고 주눅 들어 사는지 모르겠어요.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어요. 자긍심을 갖고 살았으면 해요.”

중앙대 법학과 문해성씨
"숙제 안해도 안혼나 특별대우 싫어 전학 사법고시 합격할것"

김연화양에게도 자신감이 묻어났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똑 부러졌다. 대학 1학년답지 않게 누가 봐도 당찼다. 함북 무산이 고향인 김양은 2000년 어머니와 함께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남동생은 3년 뒤인 작년 8월에 데리고 왔다. 그는 남한 생활에 잘 적응한 비결을 “당당함”이라고 했다. “당당하게 나서니 좋게 보이나 봐요. 아니다 싶으면 바로 ‘아니다’라고 말하고 속에 쌓아두는 성격이 아니어서 친구 사귀는 데 별다른 트러블은 없어요.”

서울예대 김연희씨
"코피터지게 공부해서검정고시 2년內 끝내 유학다녀와 교수될것"

18살이었던 2001년, 중학교 1학년에 편입해야 했지만 김양은 처음부터 학교 대신 검정고시로 방향을 잡았다. 2년 만에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정말 코피 터지게 열심히 했다"고 했다. 연극영화과를 가기 위해 연기학원도 다녔지만 노래를 좋아해 결국 실용음악과를 선택했다. 북한에서 유치원과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2학년을 중퇴할 때까지 음악부 활동을 한 덕에 실기 테스트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 그도 “(남한 사람들은) 워낙 경쟁적으로만 살아서 그런지 친구를 깊게 사귀려고 다가갈수록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섭섭해했다. “또래의 친구들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면 외계인 보듯 하고 뭔가 하나라도 잘못하면 ‘쟨 북한에서 와서 그래’ 하고 단정짓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그는 서너 살 위의 선배들과 ‘죽’이 더 잘 맞는다고 한다.

김양은 “남한에 올 수 있었던 걸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국에 있을 때 공안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넘겨질 뻔했던 일 등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요.” 힘들 땐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를 악문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되겠다는 김양은 아직도 ‘학업 따라잡기’가 힘에 부친다고 했다. 그러나 “경쟁사회에 왔는데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나요”라는 김양의 말에 전혀 거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