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안양시 만안구 안양 4동 옛 삼덕제지 공장터. 화장지 등을 만드는 회사로 60여년간 안양 중심가를 지켜오던 이 회사는 지난해 노사갈등 끝에 사주(社主)가 경영을 포기하고 4364평에 이르는 금싸라기 땅을 안양시에 기증한 뒤 공장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땅을 기증받은 안양시는 이 땅을 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지만, 아직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지 않아 공장은 방치된 상태다. 곳곳에 쓰레기들이 방치된 채 공장 지붕은 군데군데 무너져내려 마치 안양 도심 한가운데에 흉가(凶家)가 들어앉은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떠나는 공장들=노조파업에 문을 닫은 삼덕제지의 경우와 달리, 안양·군포 지역에 위치한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정부의 수도권기업 지방이전 정책 추진으로 이 곳을 떠나고 있다. 이 때문에 경기 남부지역은 산업공동화(産業空洞化)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동일방직, 만도기계, 한국제지 등 대기업들이 공장을 지방으로 이전한 데 이어, 제약·제과·페인트 등 대표적인 굴뚝산업들이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확정했거나 추진중이다.

부채표 활명수로 잘 알려진 동화약품은 안양시 만안구 안양7동에 있는 공장을 오는 2007년까지 충북 충주시 목행동 제2산업단지로 이전한다. 종업원 수가 500명이 넘는 유한양행도 오는 2006년까지 군포공장을 충북 오창산업단지로 모두 이전하기로 하고 공장부지 7만9000여㎡를 신일건업에 매각했다.

1959년 설립된 안양시 석수동의 제약회사 ㈜유유도 지난해 8월 충북 제천시 제천산업단지 내 토지 6만6115㎡를 매입했다. ㈜유유는 434억원을 투자, 오는 2006년까지 공장을 이전한다.

이외에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에 위치한 크라운제과 안양공장은 대전광역시 신일동 제4산업단지로 이전키로 했다. 또, LG전선 군포공장도 전북 전주시로 공장이전을 확정한 가운데, 땅값 보상과 부지 용도변경 등을 놓고 수년째 군포시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정부투자기관도 떠나라… 엎친데 덮친격=안양·군포 지역경제를 떠받쳐 온 대표적 굴뚝산업들이 타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은 공장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소음·대기오염 등 각종 민원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장부지를 아파트 용지로 팔고 값싼 공장부지를 매입할 경우, 엄청난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업체들의 계산도 한 몫 하고 있다.

주민들의 민원과 업체들의 잇속에 더해 정부의 수도권기업 지방이전 정책이 이 지역 기업체들을 밀어내고 있다. 지난 5월 산업자원부는 종업원 1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수도권 소재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부지 매입비 등으로 최고 100억원까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안양시 기업지원과 이순덕(李順德·여·51) 과장은 “수도권 과밀억제를 위해 정부가 기업체 지방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동일방직· 한국제지·만도기계 등 지방으로 이전한 공장터에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며 “고용이 줄어들면서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는 것에 더해, 애초 정부가 목표한 과밀억제는 더 많은 아파트 입주민들로 인해 설득력이 약하다”고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지방자치단체들은 공장이 떠나간 터에 아파트형 공장을 지어, 무공해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안양시는 17개 대기업 공장이 떠나간 자리에 아파트형 공장을 세워, 1014개의 업체를 입주시켰다. 고용효과 면에서도 떠나간 17개 대기업이 3336명을 고용한 반면, 이를 대체한 중소기업들에서는 1만881명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정부가 최근에는 수도권에 위치한 정부투자기관에도 이전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 이 과장은 “안양에 위치한 한국석유공사에도 이전 권고가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투자기관이 이전할 경우, 민간기업과 달리 지역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