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이라크 주권이 임시정부에 전격 이양됨으로써 폴 브리머(63) 미군정 최고행정관의 이라크 내 임무도 약 1년2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브리머는 직업 외교관으로 아프가니스탄·말라위·노르웨이에서 근무하고, 네덜란드 대사를 지내는 등 23년간 미 국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국무부 통’. 그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조지 슐츠 국무장관 밑에서 대 테러 담당 무임소대사를 역임했으며, 지난 1999년 하원에서 미국의 테러대응책을 평가하는 전국 대(對)테러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퇴임 이후에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컨설팅 회사 ‘마시 크라이시스’에서 간부로 합류했다.
브리머는 국무부 출신이지만 ‘테러 전문가’로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인사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는 2000년 6월 의회에서 “1941년 진주만 공격 같은 대규모 테러가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력 경고함으로써 9·11 테러를 사전에 예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년여 뒤인 2001년 9월 실제로 워싱턴과 뉴욕에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자 정보기관들의 자만과 나태를 비난하며 ‘테러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는 이후에도 이슬람 무장단체 지도자의 암살을 강력히 주장하는 등 ‘테러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강경책을 펴왔다.
중동지역에서는 근무한 경력이 전혀 없는 브리머가 미군정 최고행정관으로 임명된 것도 이 같은 그의 ‘강경 성향’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5월 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한 직후 테러와 시위로 이라크 내 불안이 고조되자,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의 추천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동의하에 브리머를 군정책임자로 임명했다. 브리머는 당시 이라크 군정을 이어받아 혼란을 수습할 적임자였다고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는 평가했다.
타임은 브리머가 지난 1년2개월 동안 미친 듯이 달려왔다며 그를 “장거리 주자”라고 표현했다. 이전에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하루에도 수백 건의 결정을 내린다”고 말한 바 있는 브리머는 실제로 20차례 마라톤을 완주한 경력이 있는 ‘강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