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경화여중·고 교정. 6·25 전쟁에 참전한 우방국 용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교내에 조성된 ‘평화공원’ 준공식이 열리는 동안 이 학교 김득연(金得淵·69) 이사장은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 공원은 6·25 때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하다 미군 소속 민간인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김 이사장이 사재(私財)를 털어 조성한 것.
학교 뒷동산 5만평 부지에는 25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5층짜리 국제기숙사도 9월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사관을 통해 참전 21개국 용사들의 후손을 추천받아 숙식은 물론 학비를 지원할 계획.
평화공원 중앙에는 유엔을 상징하는 지구본 모양의 ‘평화의 탑’이 세워졌고, 탑을 둘러싼 대리석판에는 전투병 파병 16개국과 의료지원 5개국의 국가소개와 참전규모, 전사자 수 등이 적혔다.
준공식에는 터키 참전용사 12명과 지갑종 UN한국전참전국협회장을 비롯한 향군인사, 경기도 내 중등학교장, 김용규 광주시장 등 120여명의 외빈과 자리를 함께했다. 김 이사장은 “반세기 전, 배고픔보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더 절실했던 그때 입었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터키 수송중대 소속으로 철원·대관령 전투 등에 참가했다는 오스만 톨가(77)씨는 “평화와 자유를 위해 흘렸던 우방국의 피와 땀이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했다.
평화공원 건립은 김 이사장과 ‘평생의 은인’ 로이드 슈(Lloyd Schuh)씨와의 개인적인 인연에서 비롯됐다.
1935년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난 김 이사장은 몽금포중 3학년 때 전쟁을 맞았다. 가족들과 헤어져 단신으로 월남한 그는 갈곳을 찾지 못하다가 전쟁이 끝난 53년 8월 백령도에서 미공군 608부대 사령관의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됐고, 이 때 로이드 슈씨를 만났다. 미군 군속 민간통신회사에서 근무하던 슈씨는 낮에는 청소를 하고 구두를 닦으면서도 밤에는 책을 놓지 않던 김득연 학생을 눈여겨 보다가 후원자가 되겠다고 나섰다. 슈씨는 김득연 학생이 서울 균명고(현 환일고)에 입학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고 매달 25달러를 학비로 대줬다. 54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도움은 계속됐다. 당시 미군 사병 월급은 75달러.
“수학문제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을 때 친절하게 가르쳐주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부모님, 형님들과 헤어져 낯선 땅에서 혼자 살아가야 했던 저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죠.”
김 이사장이 56년 중앙대 경제학과에 입학할 때는 슈씨가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격려편지와 함께 축하금으로 500달러를 송금해주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철가공업체인 동성공업에 입사한 김 이사장은 회사를 인수한 뒤 원자력발전소 공사에 참여해 돈을 벌었고, 이 때 번 돈으로 75년 학교법인 동성학원 경화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그 후에도 김 이사장은 슈씨와 편지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생활이 안정된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플로리다에 사는 그를 찾아가 은혜를 갚을 방법을 찾았지만 그는 금전적인 보답을 극구 사양했다. 김 이사장은 “슈씨가 사망한 98년 12월 학교 뒤뜰에 그를 기리는 ‘로이드 슈 기념공원’을 만들었지만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고 슈씨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어떻게 하면 이 신세를 갚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네가 나중에 성공하면 나를 찾지 말고 더 어려운 사람을 찾아 도움을 줘라. 그리고 그 때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