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계단’이나 ‘발리에서 생긴 일’이 시작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유례가 없는, 경이로운 기록이에요.”
태연한 듯한 음성이었지만, SBS 운군일 드라마 국장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21일 공개된 지난 1주일 동안의 방송 프로그램 성적표. SBS 주말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방영 2주 만에 30%의 시청률을 훌쩍 넘겨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평균 35.2%를 기록했고, TNS조사에서도 32.2%였다.
단지 4회를 방송한 드라마가 이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극히 드문 일. 방영 내내 화제를 일으키며 지난주 막을 내린 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도 26%에 그쳤고, 가수 에릭을 스타로 끌어올린 MBC ‘불새’의 시청률도 25.3%에 불과했다. “현실성 희박한 또 하나의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쏟아지는 대중적 지지는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까.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의 일등공신’은 여자 주인공 김정은. 운군일 국장은 “고마울 정도로 잘한다”고 자신의 속내를 요약했다. 영화에서 코미디 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던 이 똑똑한 배우는 TV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뿜어내고 있다. 영화 촬영감독이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파리 유학을 떠난 이 ‘불운한 고아’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집세도 내기 힘든 형편. 하지만 암담한 현실에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나간다. 그리고 재벌 2세 박신양을 만나 ‘신데렐라’로 변신하게 된다.
김정은 연기의 생동감은, 대중들이 배우의 어떤 표정과 모습에 무조건반사하는지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순발력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의 ‘예쁜 외모’가 브라운관에 어떻게 비칠지만을 걱정하는 일부 젊은 스타들과 달리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망가지고 무너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의 능수능란한 애드리브와 매력적인 표정연기가 황금비율로 섞여, 대중들의 감수성과 유쾌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시청자들이 꿈꾸는 팬터지에 대한 욕망을 설득력있게 자극했다는 데 있다. 경제도 어렵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버거운 요즘, TV를 보면서 힘든 현실을 되새김하기보다는, 드라마를 통해 잠시라도 팬터지를 꾸고 싶은 게 우리들의 솔직한 심정 아닐까.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시청자들에게, 극중 김정은이 이뤄내는 좌절과 성공은 발구르며 박수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결국 신데렐라 이야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깎아내리는 것은 무척 간편한 일이지만, 그 구태의연한 소재를 가지고 이런 대중적 인기를 얻기는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먼 이 드라마에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기보다는, 차라리 “신데렐라 이야기의 결정판을 완성해 달라”고 주문하는 게 온당한 일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