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폐허가 아직도 남아 있던 1959년, 의학(산부인과)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스물여덟 살 처녀가 있었다.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라 한때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였다. 그러나 천주교 재단이 운영하는 밀워키 위스콘신대학 부속 성모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그는 천주교에 마음이 끌리고 마침내 메리놀수녀회에 들어가 수녀가 된다.
그리고 그가 간 곳은 부모님이 병원 개원까지 준비해 놓은 부산이 아니라 검은 대륙 아프리카 케냐였다. 케냐에서도 오지(奧地)에서 20년을 보낸 그는 90년대에는 다시 중국으로 날아가 7년간 의료 봉사와 중국동포 젊은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된다.
유 루시아(73) 수녀. 그는 최근 케냐생활을 중심으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한 자서전 ‘케냐의 어머니 유 루시아 수녀’(해누리)를 펴냈다. 지난 96년 ‘마마웨뚜 가지 마세요’라는 제목으로 냈다가 절판된 책을 살려냈고, 직접 영문으로 적은 내용을 새로 실어 모두 504쪽의 두툼한 한·영 합본판이 됐다. 이 책은 미국 메리놀수녀회 본부로 보내져 수녀 지원자들을 위한 교재로 사용될 예정이다. 그만큼 그의 삶 자체가 의료선교활동의 살아 있는 교과서다.
케냐 동부 키난고에서 병원을 운영할 때는 당초 예정된 기간인 5년이 지나도록 케냐인 의사들조차 근무를 꺼려서 2년을 더 봉직해야 했다. 당시 겪은 일화들은 그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선교활동이었는지 생생하다.
매일 지각하는 청소원을 야단치니 “저는 해가 우리 집 바나나 나무 위에 올 때 나옵니다” 하고 태연히 대답하고, 수술보조원을 시킨 청소년들이 피를 보고는 졸도하는 것쯤은 애교다. 출산 때 더러운 칼로 탯줄을 자르는 바람에 파상풍으로 신생아들이 죽어가기도 했다. 문명 혜택이 조금만 스며도 살 수 있는 환자들이었다.
가뭄으로 대기근이 들었을 때는 병원에서 약 대신 쌀과 우유를 싣고 주민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특히 병원 문을 열고 처음 맞은 신생아 환자가 사망했던 안타까움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부모는 이렇게 말해 수녀를 감동시킨다.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이 아이의 이름이 하느님의 책 속에 적혀 있으면 수녀님이 아무리 노력해도 데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유 수녀는 생명을 구해준 신생아를 8년 후 다시 만났던 때를 케냐에서 겪은 가장 감동적인 일로 회상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됐다며 자동차로 9시간이 걸리는 곳에서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다.
유 수녀는 요즘은 서울 가양동 메리놀수녀원에서 수녀 지원자들을 지도하면서 매주 수~금요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행려병자·극빈자 치료시설인 요셉의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여전히 낮은 곳을 찾고 있는 셈이다.
“우리 수녀회는 수녀복을 입지는 않아요. 그래서 환자들도 편하게 대합니다. 저보고 ‘할머니’ ‘아주머니’라 그래요. 케냐에서도 그랬습니다. 대신 저는 평생 마음의 수녀복을 입고 살았습니다. 보람된 일이었지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이 낮은 곳을 찾는 이유에 대해 “단순한 사람들일수록 마음이 아름답고, 그 마음을 보고 있으면 얻는 것이 많다”며 가장 아끼는 성경 구절인 마태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들려줬다.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유 수녀는 “지금까지 삶을 돌이켜보면 하느님이 정열을 주셨기에 그 정열을 태우고 온 것 같다”며 “인생의 석양 시절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22일 오후 7시 요셉의원에서는 유 수녀의 책 출간을 축하는 작은 출판기념회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