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력 있는 비전으로 국민을 결집하고, 임기 내에 구체적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여 한 시대의 물꼬를 트고 서거한 레이건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세기 링컨의 노예 해방, 20세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구현, 케네디의 신개척정신 제안에 이어 레이건의 미국 자부심 고취(American pride)는 20세기 후반의 미국 진로에 큰 밑그림을 제시했다.
미국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레이건의 대내적 노력은, 방만한 정부를 걸림돌로 여겨 날렵한 정부로 구조조정하고, 소득세를 낮추고 악성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며, 경기침체를 활성화시킨 공급자 위주의 경제정책 실천에 있었다.
그 과실은 훗날 균형예산을 가능하게 한 민주당 클린턴 정권에 돌아갔고, 작은 정부 정신은 클린턴 대통령도 계승하였다. 공급자 위주의 경제정책에 대해 진보 사회주의자들이 퍼부은 “부유층을 살찌우는 레이건은 수구 대통령이다”라는 비난에, 레이건은 “가족 행복 추구와 강건한 나라 세우기에는 우리 모두 하나다”라면서 미소로 화답하는 친화력과 특유의 유머로 아우르는 정치를 폈다.
또한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신년교서를 발표할 때 단 한 번도 보수수구와 진보혁신이라는 이분법적 화술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구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칠순의 레이건은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영하 30도의 강추위에도 외투를 걸치지 않은 채, 두툼한 외투를 입고 차에서 내린 50대의 고르바초프를 맞이하면서 기를 꺾었다.
회담 과정에서, 소련이 대륙간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면 미국은 방공미사일 전역화로 맞서겠다는 단호한 레이건의 뱃심에 고르바초프도 손을 들었다. 1991년 겨울, 소련 국방부 군비통제 국장이 필자에게 이런 일화를 소개하였다.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정치위원회에서 미·소 군비통제 필요성을 설명할 때, 군비팽창으로 무너져가는 당시의 소련을 생각하면서 실무자는, “미군 군축대표에게 전략핵무기 감축을 간곡히 애원할 정도였다”고 했다.
군사분계선에 7개 군단을 투입하고 군 복무가 의무인 한국의 현실에서, 탈냉전시대라 하여 눈앞의 북한군을 주적으로 보지 말자는 대통령들의 모호한 정치태도를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남한이 지원하는 현금과 식량원조가 북한의 1년 수출입 총액보다 큰 규모인데도 오히려 원조를 받는 북한 당국이 더 큰소리친다.
북한 인권문제에는 침묵하고 북핵문제는 주변국 6자회담 의제가 되어 한국이 주도권을 상실한 시점에서, 한국의 대통령들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기 위해 고르바초프에게 베를린 장벽을 헐어버리라고 직격탄을 날린 레이건 대통령의 과단성 있는 국정운영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할 수는 없는가.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남캘리포니아의 시미밸리 언덕에 새워진 레이건 기념 도서박물관 전시장 입구에는 군 장교로 근무한 최근 대통령들의 사진과 제복이 전시되어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공격함정을 지휘한 케네디, 닉슨 해군 중위, 해군 전폭기 조종사 부시, 육군 대위 레이건, 그리고 놀랍게도 정면 중앙에는 해군사관학교 출신 카터 소령의 군복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레이건 기념관을 개관할 때 제일 먼저 축하하고 개관테이프를 끊은 대통령은 선거에서 레이건에게 패배해 재선에 실패한 민주당 카터였다. 이념과 정책에서 다른 길을 걸어도 국가위기에 모두가 하나되는 애국심을 이끄는 카터나 레이건 대통령의 모습을 우리의 대통령들은 한번쯤 눈여겨볼 만하다.
(최평길 연세대 교수·대통령 포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