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포장마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노동자와 중·소상인들은 생선에 밀가루옷을 입혀 즉석에서 기름에 튀겨낸 덴푸라와 그 자리에서 생선살에 밥을 얹는 스시, 그리고 메밀국수를 후루룩 들이키고는 다시 갈 길을 떠난다.”
이것은 지금부터 약 150년 전 에도(현재의 도쿄) 거리의 모습이다. 현재와 비교해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이 풍경은 이미 당시부터 일본, 특히 에도 거리에는 현대적 의미의 ‘패스트푸드’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에도막부 시대(1603~1867년)를 음식으로 들여다본다. 에도시대의 식생활 전문가인 저자가 여러 자료를 뒤져서 내놓는 에도시대의 식도락 관련 기록은 ‘패스트푸드’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을 보여준다. 가령 1860년 소바(메밀국수) 값이 너무 비싸다는 여론 때문에 장안의 소바 가게들이 회합을 갖는데, 여기 참석한 가게 수가 3763개에 이른다. 에도의 외식문화는 에도가 정치의 중심지인 데다 대형 화재가 잦아 늘 건축·복구공사가 이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미 18세기에 인구가 100만명에 이르렀다는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이미 1643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요리이야기’라는 요리책이 출간됐고, 1804~1830년에는 요리책의 수가 200권 정도에 이르게 된다. 이런 풍속의 변화는 미술에도 반영됐다. 당시의 목판화에는 이미 단팥죽, 경단, 메밀국수, 덴푸라, 스시를 파는 포장마차의 모습이 등장하고 포장마차 앞에서 손님의 덴푸라를 채가는 개를 그린 그림도 있다. 그해 처음 잡아올린 가다랑어는 ‘마누라를 저당 잡히고도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서민들이 즐긴 음식들로는 그 밖에도 찻물로 지은 밥, 생선·조개 조림요리, 김, 양갱 등이 있다.
한시가 급한 서민들의 패스트푸드와는 격(格)이 다른 쇼군(장군)과 무사들의 음식도 없을 리 없다. 단적으로 쇼군들은 덴푸라를 먹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쇠고기, 돼지고기, 파, 부추, 마늘, 전어, 꽁치, 정어리, 상어, 복어, 굴, 모시조개도 금기음식이었다.
또 과일 중에도 배, 감, 밀감은 괜찮고 수박, 복숭아, 사과, 자두는 보기만 할 뿐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것저것 다 뺐지만 그래도 쇼군이 먹을 음식은 많아 저녁식사의 경우, ‘잉어를 토막 내어 된장과 함께 끓인 국, 도미회, 어묵, 양갱, 달걀부침, 오리·기러기 고기, 전복요리, 생선 알집을 소금에 절인 음식 등을 먹었다.
무사들도 소·돼지 등의 육식은 삼가고, 주로 생선을 먹었다. 그러나 에도시대 후반에 들어서 몰락한 무사들이 칼을 찬 채로 포장마차에서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패스트푸드’를 먹는 모습이 목판화 등에 묘사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 밖에도 19세기 초에 최고급 차(茶)와 함께 절인 야채를 얹은 ‘챠즈케’라는 간단한 음식에 금 한 냥 이상을 받은 최고급 음식점 야오젠 이야기 등을 소개한다.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음식이라는 창을 통해 에도시대를 훑어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