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청와대와 정부 부처는 물론, 국회와 사법부, 헌법재판소까지 포함시킨 85개 기관을 이전 대상 국가기관으로 발표했다. 이 발표를 보면서 우선 드는 생각은 이건 정부가 지금까지 말해 온 ‘일부 행정기관의 이전’ 수준이 아니라 국가 중심 기능 거의 전부를 옮기는 ‘천도(遷都)’라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 ‘사실상의 천도’라는 지적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수도 기능의 극히 일부만 옮기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랬던 정부가 이제는 신행정수도추진위의 민간위원장조차도 “행정수도 차원을 넘어 수도 이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하듯이 완전히 말을 바꿨다.

이 정권의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해온 것이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렀다면 수백가지 대선 공약 중의 하나로 집어넣어 국민 동의를 받은 것처럼 은근슬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 ‘천도’라는 이름에 걸맞은 국민적 합의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더욱이 지난 총선으로 입법부까지 장악했다고 그런지 헌법상 독립된 사법부와 입법부의 견해 한번 듣지 않고 마음대로 이전 대상기관에 끼워 넣은 것은 이 나라가 삼권분립의 국가가 아니라 행정 만능의 행정독재국가라는 점을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또 외국공관은 외교타운만 만들어 놓으면 알아서 따라오리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각국 외교관들은 천도 계획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될지에 대해서 회의적일 뿐 아니라 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따로 허허벌판 같은 신행정수도에 분소(分所)를 차려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는 상황을 어리둥절하게 여기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 1월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천도가 필요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46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땅 파고 집 짓는 데 쏟아붓겠다는 이 정부의 무모함을 보면, 이 정권은 국민으로부터 잠시 국정 운영을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마치 왕조시대 역성혁명(易姓革命)에 성공한 권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