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 후보는 현역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중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 꼽힌다. 52세에 벌써 서울 지역구(관악을) 의원 5선을 기록 중이고, 교육부 장관과 집권당 정책위 의장 2회, 서울시 정무 부시장 등을 지냈다. 또 96년 15대 총선 때 국민회의 총선기획단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97년 대선 김대중 후보 선거기획본부 부본부장, 2002년 대선 노무현 후보 선대위 기획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지난 10여년 동안 현 여권의 선거 기획 업무를 총괄해 왔다. 그만큼 현 여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획력과 행정 능력, 조직 장악력 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다. 그는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10년 형을 선고받아 2년 6개월 복역했다. 이 후보는 정치권에 진출한 ‘재야 운동권 1세대’다. 충남 청양 출신으로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이 후보는 71년 서울대 공대 섬유공학과에 진학한 ‘얌전한 공학도’였으나, 당시 시국 상황에 분노, 공대를 그만두고 이듬해인 7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제적과 복학을 반복한 끝에 대학 입학 15년만인 86년 졸업했다.
이 후보는 13대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초선의원으로 만났고, 현재 구속 중인 이상수 전 민주당 사무총장과 더불어 이들 3인은 13대 국회 노동위의 ‘3총사’로 불렸다. 이 후보는 당시 국회 광주특위 등을 통해 ‘청문회 스타’로 명성을 얻었다. 또 노 대통령은 92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 주류세력인 동교동계에 반발, 잠시 탈당했다 복당한 이 후보가 공천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자 당시 대변인이었던 노 대통령이 직접 당 지도부를 적극 설득했다는 일화도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이 후보를 선대위 기획본부장으로 임명하면서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화려한 공직 경력의 이면에는 그늘도 적지 않다. 이 후보는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초대 교육부장관을 맡아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가 교육부 장관으로서 “성적 위주 선발을 지양하고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겠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입시개혁안이 오히려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 저하를 가져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설화(舌禍)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2002년 8월 대선을 앞두고 “국회 대(對)정부 질문을 앞두고 검찰측이 병풍(兵風) 유도 발언을 요청했다”고 발언, 이 문제로 50만원의 과태료를 받은 일이다.
이 후보는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와 서울대학교 동기동창이며, 김근태 원내대표는 ‘재야운동권 선배’로 깍듯이 따르는 사이다. 이 후보는 김대중 정부 시절 당내 개혁 그룹보다는 권노갑 전 의원의 ‘골프 친구’로서 동교동계와 가깝게 지냈다.
통일, 문화, 보건복지 등 3개 부처 장관만 교체한다는 노 대통령의 당초 구상이 유지될 경우 52년 7월생인 이 총리 후보는 새 내각에서 두 번째로 젊은 국무위원이 될 전망이다.
현 내각 중에선 강금실 법무(57년생), 이창동 문화관광(54년생) 장관 등 두 명이 이 후보자보다 어린데 이 문화장관은 교체 대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