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패배로 빛이 바랜 전쟁 승리.’ 일본 쪽에서 바라본 청일전쟁의 결과다. 조선을 넘어서 만주 서남부와 산둥반도, 타이완으로 확대된 청일전쟁이 일본의 압도적 승리로 진행되자 두 나라는 1895년 4월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강화조약을 맺었다.
청의 북양대신 이홍장과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전권대신으로 참가한 이 조약의 주요 내용은 청이 (1)조선이 독립국임을 승인하고 (2)일본에 랴오둥(遼東) 반도와 타이완·펑후다오(澎湖島)를 할양하며 (3)2억냥의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으로서는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을 단절하는 동시에 만주로 진출하는 발판까지 마련한 획기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일본의 완승은 중국 본토와 만주를 노리고 있던 구미(歐美) 열강을 자극했다.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지 6일 후 주일 러시아·독일·프랑스 공사는 함께 무쓰 외무대신을 방문하여 일본이 랴오둥 반도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은 이를 거부하기 위해 영국·미국 등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들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결국 랴오둥 반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열강의 개입은 일본이 조선과 만주를 차지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청만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일본 내에서는 ‘삼국 간섭’을 주도한 러시아에 대한 적대 감정이 높아졌으며, ‘와신상담’의 구호 아래 또 한번의 전쟁준비와 군비확충이 본격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