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의 한 바에는 오디오도 없고 CD도 없다. 대신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을 종일 틀어준다. 모두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음악 MP3 파일들이다. CD 한 장 없이도 3000여곡의 노래 중에서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클릭 한 번으로 틀 수 있다. 그러나 이 음악들은 대부분 현행법상 ‘불법’으로 다운받은 것이다.
음악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음악 콘텐츠를 다루는 시장에도 격변과 파란이 일고 있다. MP3(고음질 오디오 압축파일)의 출현과 인터넷 스트리밍(인터넷에서 라디오처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술)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은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물론, 기술이 허락하는 어떤 매개체에도 서식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음반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0년 국내 음반시장 규모는 4104억원이었으나 작년에 1833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반면 컬러링과 벨소리·스트리밍 등 디지털 음악 시장규모는 2000년 450억원에서 작년 1850억원으로 4배 이상 늘어 이미 기존 음반시장을 눌렀다. ‘불법 MP3’로 대표되는 불법 디지털 시장 추산치까지 합치면 디지털 시장규모는 무려 7000억원을 넘는다.< 그래픽 참조 >
휴대전화보다 작은 MP3 플레이어에 노래를 100곡씩 담을 수 있게 됐고,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MP3폰이 출시됐다. 그러나 음악의 진화를 이끈 MP3는 정작 음악산업을 고사(枯死) 위기에 빠뜨렸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지난 3년 새 음반시장 규모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의 가장 큰 원인을 불법 MP3로 꼽고 있다. 당장 음반 매출 감소뿐 아니라, 이렇게 가다간 새로운 창작물을 내놓을 토대 자체가 사라진다는 위기감도 높다.
MP3폰은 당장 최대의 갈등 요소다. 흑백에서 컬러로, 다시 카메라폰으로 진화한 속도와 규모를 보면, MP3폰은 금세 3500만대 규모의 휴대전화 시장을 평정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불법 MP3 문제가 해결이 안 돼 아직 MP3폰 출시를 미루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판매가 시작됐다. 두 달 전 LG텔레콤이 음반업계와의 약속을 깨고 무제한 재생이 가능한 제품을 출시, 13만대가 팔려나가자 음반업계는 시위를 벌이며 항전 중. 그러나 28일 LG텔레콤이 “합법적 MP3도 재생을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 권리 침해”라며 재생시간 72시간 제한을 거부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음반업계는 “시중 MP3의 90% 이상이 불법이므로 LG의 주장은 그럴 듯한 허울일 뿐”이라고 법적 대응을 선언했고, 음악산업·IT업계·소비자 모두 만족할 해법은 아직 도출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음악산업의 디지털화는 이제 우리 일상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MP3의 적정한 유료화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지 않으면 당장의 ‘공짜 음악’을 좋아하다 음악산업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은 이제 엄살 아닌 현실이다. 미국 가수 매리 J 블라이즈의 노래 ‘패밀리 어페어’가 담긴 음반 ‘노 모어 드라마’는 국내에서 1만5000장 가량 팔렸지만, 한 CF에 쓰여 인기를 얻으면서 유료 컬러링 다운로드가 34만건이나 됐다. 디지털 음원 판매량이 20배 이상 많은 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디지털음악 국가’로 떠오르자 최근 미국은 우리나라를 ‘지적재산권 우선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소리바다’와 같은 P2P(개인 간 파일공유)를 통해 음악뿐 아니라 동영상도 얼마든지 ‘해적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