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 국제부장

얼마 전 일본 극우파가 해방 후 최초로 독도 상륙을 시도하려 했었다. 며칠 전에는 일본 순시선이 우리 조업 어선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 선장 얼굴이 다치는 사건도 일어났다. 역시 해방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연속 일어났을까.

최악으로 치닫는 한·미 상황과 관련 짓는다면 지나친 상상력일까.

사실 독도는 해방 후 미군이 되찾아 준 땅이다. 지난 50여년간 ‘왕년의 식민 종주국’ 일본에 대해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우리 뒤에 미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지금 급속히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비판 여론 속에 두 번째 평양 방문을 결행한 배경에는 일본인 납치자 가족을 데려온다는 인도적 차원 외에 대(對)한반도 영향력 확대라는 ‘원려(遠慮)’가 숨겨져 있다.

지금 일본은 미국을 대신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의 대리인’ 역할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처럼 미국에 바짝 붙어, 최상의 미·일 관계를 구가한 적은 없었다. 요즘 일본 언론들은 주한미군보다 격이 낮았던 주일미군사령부가 향후 동북아 미군 전력의 중추기지로 격상될 것이라고 보도한다. 그래서 그쪽이 지휘부가 된다면 일본의 정치·군사적 역할 확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새삼 100년 전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용인했던 미·일 간 ‘가쓰라-태프트 조약’(1905년)이 생각난다.

이분법적 분류에는 동조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소위 ‘동맹파’와 ‘자주파’를 생각해보면 현실을 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동맹파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나 국력이 아직 미약하므로 미국 같은 대국과의 제휴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자세인 반면, 자주파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자립·자존할 수 있다는 이상적 입장을 견지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역량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전 이후 최대 위기였던 IMF 위기가 그 생생한 예다. 1997년 7월 동남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가 불과 4개월 뒤 한국을 덮쳐 국가부도(모라토리엄) 위기로까지 확산됐을 때 전 세계도 놀랐다. 단군 이래 최고 호황에 취해 대통령부터 말단까지 오만과 과신, 흥청망청이 빚어낸 대가였다.

당시 위기를 벗어나게 한 결정적 계기는 바로 클린턴 정부가 제공했다. 루빈 재무장관은 성탄절 전날 서방 13개국 재무장관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연말까지 한국이 갚아야 할 단기 부채의 지급유예(roll-over)를 부탁했고, 이를 계기로 우린 국가 파산을 모면케 됐다. 미국 지도부가 발벗고 나선 결정적 계기는 한국 안보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한국 경제는 아직 취약하다. 석유 수입량 세계 3위란 점은 우리가 중동 상황에 ‘목줄’을 걸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 과열 우려를 낳는 대(對)중국 경제 의존도 역시 매우 높은 편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상황이자 휴전상태이며, 주변 강대국 세력 분포도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런 상황인데 입만 열면 ‘자주(自主)’를 외치고,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남의 나라를 얕보는 풍조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아이들이 그러면 치기(稚氣)로 볼 수도 있지만 어른들이, 그것도 국정을 책임진 이들 중에서도 설익은 호기와 무지로 세상을 낙관하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만의 형벌이 또다시 우리 한민족을 덮칠까 두렵다.

(함영준 국제부장 yjhah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