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퍼플(The Color Purple)’로 퓰리처상(1982년)을 수상하며 영미문학계에 이른바 ‘할렘 르네상스’를 예고했던 앨리스 워커가 25일 한국에 왔다. 60세의 그는 나뭇잎 문양이 찍힌 연두색 블라우스에 노랗게 물들여 땋아내린 ‘드레드록’으로 인해 20년은 더 젊어보였다. 기자회견 중 누군가의 휴대전화에서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가 터져나오자 즉석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한국에 온 소감을 묻자, “나는 작가로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 미국 정부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 온 것도 우리가 지닌 공동의 인간성을 증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태어난 앨리스 워커는 ‘컬러 퍼플’ ‘여인들의 신전’ 등 20권의 저서를 낸 시인이며 소설가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워커는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로 경찰서를 밥먹듯 들락거리는 여성운동가로 더 깊이 각인돼 있다. 서구적 의미의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대해 흑인계 미국 여성들의 페미니즘을 뜻하는 ‘우머니즘’을 만든 것도 그다. “우리는 백인 남성뿐 아니라 백인 여성들의 힘에 의해서도 억압받아 왔으니까요. 어머니는 내게 인종에 대한 올바른 메타포를 심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어느날 우리에게 정원을 한번 바라보라고 하셨어요. 그리곤 말씀하셨죠. ‘모든 색깔의 꽃들이 피어 있지만 어떤 꽃도 다른 꽃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라고요.”
워커가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 된 것도 “내 아이들은 농장이 아닌 학교로 보낼 것”이라며 백인들의 방화에 맞서 학교를 지었던 부모 덕분이다. 학창 시절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쫓아다니며 민권운동에 뛰어들었고, 1980년대에는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문학도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의붓아버지와 남편에게 학대받던 흑인 여성 실리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는 과정을 그린 ‘컬러 퍼플’은 근친상간, 가정폭력 문제 등 미국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들은 물론 ‘강요된 하느님’ ‘백인이고 남자인 하느님’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까지 여지없이 깨뜨린다. “왜 우리는 부모와 사회가 ‘믿으라!’ 하고 가르친 신만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이 느껴서 받아들이는 절대 존재를 스스로 찾아야 하지요. 하느님은 저 멀리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신성(神聖)은 존재합니다.”
‘어머니처럼 훌륭한 농부가 되기 위해’ 캘리포니아 자택에 커다란 정원을 가꾸는 워커는 요즘 자연요법에 심취해 있다.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지금은 마음을 열어야 할 때(Now is a time to open my heart)’는 1년간 아마존 밀림에 들어가 원주민 무당과 함께 지낸 이야기다. “나무와 꽃을 가꾸면서 식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뿐만 아니라 상처도 치유해준다는 확신이 들었지요. 식물 때문에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남미 토착민들이 태곳적부터 활용해온 주술의학을 배웠습니다. 결국 대지와 자연이 인간의 병을 치유할 것입니다.”
15일간 한국에 머무는 워커는 경남 하동 새미골에서 일반인과 함께하는 평화기행(6월5~6일)을 비롯해 이화여대 특강(28일), 평화음악회(29일)를 미국 유니언신학대 현경 교수와 함께 진행한다. 방한을 맞아 워커의 저서들도 여러 권 출간됐다. 그중 ‘현경과 앨리스의 신(神)나는 연애’(마음산책)는 두 여성운동가의 공동 시집이자 한국 여성들이 그들에게 던진 열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