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줄곧 우리 문학계를 관통해온 화두 가운데 하나가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이웃 일본의 두 차례 수상으로 인한 자극이 추동력이 되어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노력은 8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90년대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20년이 넘는 동안 번역·출판의 지원을 통해 800종에 달하는 문학작품이 번역되어 해외에서 출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무대를 향한 한국문학의 여정은 아직도 먼 길에 머물고 있다. 왜일까.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체계적 전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고, 그 기저에는 기본적 마인드의 오류가 있다.
이런 일화가 있다. 대하소설이 열병처럼 쓰이고 읽히던 시절, 그러니까 90년대 초반 무렵이다. 격동의 근대사를 배경으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격랑 같은 삶을 파노라마처럼 그린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무렵 한 번역자가 10권 분량의 한 대하소설에 깊은 감명을 받고 외국의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아니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그는 미국의 한 출판사 사장을 만나 간곡히 설득했다. 한참을 주저하던 출판사 사장은 며칠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숙고 끝에 ‘그 중요한 작품’의 출판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1권 분량으로 줄여 오는 것을 조건으로.
물건을 팔려고 할 때 소비자의 기호를 파악하고 그에 맞추려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해당 어권의 독자나 출판사들이 선호하는 작품 경향은 무엇인지, 현지의 외국문학 수용 흐름은 어떤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나 조사는 거의 없다. 우리가 알리고 싶은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문조사가 더러 있었을 뿐이다.
서구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아니 가까운 예로 몇 해 전 불어로 번역되어 프랑스 주요언론의 큰 주목을 받으며 프랑스 4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페미나상 외국소설 부문의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던 이승우의 ‘생의 이면’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일본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보편적인 가치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상상과 의식의 산물인 문학은 평등한 문화교류를 가능케 한다. 문학은 한 민족의 삶과 사상과 역사의 결정체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한 집단의 문화를 다른 집단에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하지만 수용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살아온 삶과 역사와 문화가 다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리고 싶은 작품을 번역·출판하고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현지에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반응이 없다고 불평하고 답답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추해 볼 일이다.
또한 우리 것을 알리려고만 하는 모습은 자칫 국수주의로 오해받기 십상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를 알리고 싶은 열망이 강할수록 상대방의 것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병행 혹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강조하는 스포츠나 다른 분야와 분명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곽효환 시인·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