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군이 아닌 외국군이 소설과 시의 등장인물로 나올 때마다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민족주의 진영의 문학에서도 이미 뉴스가 아니다. 이 정황은 20세기 전 지구촌 어디서든 비슷했다. 소련군이 북한문학에서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잠시 접어둔다면 한반도 남쪽에서 미군은 동맹군, 주둔군, 점령군 같은 다층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중요한 문학 소재로 기능해 왔다.
우선 주한미군은 대개 ‘악의 축’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았으나 어려웠던 시절 기지촌 주민이나 양공주들이 벼랑 끝에 다다른 신산한 삶을 영위하는 장소로 등장하기도 했다.
전쟁 직후인 50·60년대에는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아이들이 미군의 하우스보이나 펨프(뚜쟁이) 노릇을 하는 암담한 분위기를 그린 작품이 많았다(송병수의 ‘쑈리 킴’, 오영수의 ‘안나의 유서’). 그러나 소설의 스토리가 미군부대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이들이 그런 곳으로까지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 비리에 대한 고발 측면이 더 강조되는 작품도 더 많았다.
1965년에 발표된 남정현의 단편 ‘분지(糞地)’는 2년여 동안 필화사건에 휘말렸던 작품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미군에게 강간당해 죽고, 누이동생은 미군의 현지처로 학대를 받는다는 내용 등으로 당시에 작가에게 큰 곤욕을 치르게 한 문제작이 됐다.
기지촌은 미군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였다. 천승세의 ‘황구의 비명’과 강석경의 ‘밤과 요람’ 등이 대표적이다. ‘황구의 비명’은 자신의 아내의 돈을 떼어먹고 달아난 창녀를 찾아 파주 용주골에 간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미군에 대해 직접적인 화살이 겨누어진 적도 있다. 신상웅의 중편 ‘분노의 일기’와 조정래의 단편 ‘타이거 메이져’에는 미군들과 대등한 관계를 확보하려는 과감한 행동을 보여주는 한국 군인들이 등장한다.
김명인의 시집 ‘동두천’에서 동두천은 우리 민족에게 일종의 상처와도 같은 도시로 그려진다. 동족간의 비극적인 전쟁에 개입했던 미군 군대가 아직 머무르고 있는 그곳엔 그들을 상대로 몸을 팔아 살아가는 여자들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의 슬픈 운명이 있다.
다른 한편 미군기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의 삶을 구성하는 피할 수 없는 장(場)이었다. 박완서의 장편 ‘나목’에서 주인공 이경은 6·25전쟁 중 서울 명동의 미8군 PX초상화에 근무한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의 배경이 된 항구 도시 인천의 기지촌과 미군 부대는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 있는 전형적인 전후(戰後) 풍경이었다.
작년에 출간된 최인석의 장편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는 무대를 이태원과 해방촌으로 옮겼다. 고아원에서 탈출한 주인공은 이태원의 미군 나이트클럽에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훨씬 더 추악한 세상의 모습을 접하면서 미군 PX물품 밀매와 간음, 대마초와 집단 혼음에 빠져든다. 그곳에서 만난 고아원 여자 친구는 점령군의 위안소에 배치된 노리개였다.
문학평론가 황광수씨는 “주한미군은 50·60년대에 소설로 많이 다루어진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며 “내면으로만 파고든 90년대 이후 문학의 한계를 탈피하기위해서라도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문학의 자양분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