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당초 6월 20일 이후라던 개각을 다음주에 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가운데, 이미 사의를 밝힌 고건(高建) 총리가 각료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덕룡 대표, 열린우리당 방문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20일 신임 인사차 열린우리당사를 방문, 천정배 원내대표, 신기남 의장, 홍재형 정책위의장(왼쪽부터) 등과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a href=mailto:gibong@chosun.com><font color=#000000>/ 전기병기자</font><



막바지 이른 개각 논의

여권 내부의 개각 논의는 교체 대상 장관, 이 자리를 충원할 입각자 등 주요 포인트가 거의 설정돼 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여권 핵심 인사들의 말을 통해 감지되고 있다.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0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장관이 바뀌지 않은 부처”를 교체대상 1순위로 꼽았다. 참여정부 출범 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처와 장관은 정세현 통일, 조영길 국방, 강금실 법무, 진대제 정보통신, 김화중 복지, 이창동 문화관광, 지은희 여성부 장관 등 7명이다. 이 중 유임이 확실시되는 강금실 법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제외한 4~5개 부처가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얘기다. 작년 8월 취임한 허성관 행자부 장관의 거취도 관심권에 들어와 있다.

새로 입각할 후보로는 열린우리당에서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확정 단계에 있고 정동채 의원도 입각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 전 의장은 통일부장관이 유력하고, 김 전 대표는 문화관광부나 복지부장관 등에 거론되고 있다. 교통정리 결과에 따라서는 두 사람의 입각 부처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정동채 의원도 문화부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한때 입각대상으로 거론되던 이부영 김정길 씨 등 낙선자 그룹은 입각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총리 후보로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내정된 상태다.

개각 시기와 관련해서는 다음주 개각이 유력한 가운데 총리 제청권과 관련된 위법 논란 때문에 다시 6월 말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만 말했다.

고건총리 "새 술은 새 부대에"

지금까지의 여권 내부 기류대로 다음주 중 개각이 이뤄질 경우에는 총리의 제청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사의를 표명하고 그 사의를 대통령이 수용한 상태에서 고건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 소지가 있는 것이다.

헌법 87조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면상으로만 보면 아직 고건 총리가 사의는 표명했지만 사표 수리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별 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개각은 노 대통령의 집권 2기를 맡게 될 제2기 내각을 구성하는 의미를 갖고 있고, 그 개편의 핵심은 총리가 바뀌고 그에 따라 새 진용을 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개각은 새로 지명된 총리가 국회 인준을 받아 임명된 뒤 제청권을 행사해 이뤄지는 것이 타당한데도 물러나는 고 총리에게 제청권을 행사하게 하려는 것은 편법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새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청권을 행사해야 하는 당사자인 고 총리 본인도 상당히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 총리는 1998년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때도 김종필 총리에 대한 국회 인준이 늦어지면서 다른 각료들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하면서 “다시 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고 총리는 최근에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순리”라고 말해, 새 총리가 국회 인준 후 제청권을 행사하는 게 맞다는 취지로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