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당초 6월 20일 이후라던 개각을 다음주에 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가운데, 이미 사의를 밝힌 고건(高建) 총리가 각료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막바지 이른 개각 논의
여권 내부의 개각 논의는 교체 대상 장관, 이 자리를 충원할 입각자 등 주요 포인트가 거의 설정돼 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여권 핵심 인사들의 말을 통해 감지되고 있다.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0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장관이 바뀌지 않은 부처”를 교체대상 1순위로 꼽았다. 참여정부 출범 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처와 장관은 정세현 통일, 조영길 국방, 강금실 법무, 진대제 정보통신, 김화중 복지, 이창동 문화관광, 지은희 여성부 장관 등 7명이다. 이 중 유임이 확실시되는 강금실 법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제외한 4~5개 부처가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얘기다. 작년 8월 취임한 허성관 행자부 장관의 거취도 관심권에 들어와 있다.
새로 입각할 후보로는 열린우리당에서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확정 단계에 있고 정동채 의원도 입각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 전 의장은 통일부장관이 유력하고, 김 전 대표는 문화관광부나 복지부장관 등에 거론되고 있다. 교통정리 결과에 따라서는 두 사람의 입각 부처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정동채 의원도 문화부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한때 입각대상으로 거론되던 이부영 김정길 씨 등 낙선자 그룹은 입각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총리 후보로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내정된 상태다.
개각 시기와 관련해서는 다음주 개각이 유력한 가운데 총리 제청권과 관련된 위법 논란 때문에 다시 6월 말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만 말했다.
◆고건총리 "새 술은 새 부대에"
지금까지의 여권 내부 기류대로 다음주 중 개각이 이뤄질 경우에는 총리의 제청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사의를 표명하고 그 사의를 대통령이 수용한 상태에서 고건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 소지가 있는 것이다.
헌법 87조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면상으로만 보면 아직 고건 총리가 사의는 표명했지만 사표 수리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별 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개각은 노 대통령의 집권 2기를 맡게 될 제2기 내각을 구성하는 의미를 갖고 있고, 그 개편의 핵심은 총리가 바뀌고 그에 따라 새 진용을 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개각은 새로 지명된 총리가 국회 인준을 받아 임명된 뒤 제청권을 행사해 이뤄지는 것이 타당한데도 물러나는 고 총리에게 제청권을 행사하게 하려는 것은 편법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새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청권을 행사해야 하는 당사자인 고 총리 본인도 상당히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 총리는 1998년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때도 김종필 총리에 대한 국회 인준이 늦어지면서 다른 각료들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하면서 “다시 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고 총리는 최근에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순리”라고 말해, 새 총리가 국회 인준 후 제청권을 행사하는 게 맞다는 취지로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