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월곡리에서 ‘아이스 홍시’를 생산하고 있는 ‘경청농산’의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늘한 바람과 함께 감 향기가 확 풍겨왔다.

2000평 남짓한 공장 안에서는 두툼한 겨울 점퍼에 장갑으로 무장한 20여명이 단단하게 얼어 있는 홍시 상자를 냉동창고에서 꺼낸 뒤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벗겨 포장 기계 속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해두(45) 대표는 “경북지역을 비롯해 전국 150여개 학교에 급식용으로 보낼 제품”이라며 “다른 재료를 전혀 첨가하지 않은 순수 과일 아이스크림이어서 어린이들 건강식품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건네준 아이 주먹 크기 만한 아이스 홍시 하나를 입에 물자 겉의 아삭한 얼음이 씹히면서 젤리 같은 달콤한 감물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청도군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감을 이용해 아이스 홍시를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경청농산에서 이해두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종업원들이"한여름에 먹는 아이스 홍시는 최고의 별미"라며 자랑하고 있다. <br> <a href=mailto:jw-lee@chosun.com><font color=#000000>/ 이재우기자</font><

20여 농가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청농산의 지난해 매출액은 태풍 피해에도 불구하고 20여억원에 달했다. 이 공장이 하루에 처리하는 아이스 홍시는 7t. 이 지역 감의 15% 정도를 소비하고 있어 매년 10% 정도 감 가격을 올리는 효과까지 내고 있다.

이 대표는 “해마다 많은 양의 감이 일시에 쏟아져 마땅한 저장방법이 없어 골치를 썩여 왔다”며 “할머니가 홍시를 얼려 먹던 것을 떠올려 지난 96년 아이스 홍시 개발에 나섰다”고 말했다.

‘홍시를 얼린다’는 뜻의 아이스 홍시는 늦가을에 감을 홍시로 만들어 급속 냉동했다가 여름철에 선보이는 제품. 하지만 개발이 쉽지는 않았다.

“지난 96년 처음 대량 생산을 시도했을 땐 기계도 없었고 저장법도 몰랐습니다. 농업진흥청에 기술 조언을 구해 당도를 높이고 적당히 익히는 방법을 개발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이 대표는 “처음 3년 동안은 일용직원들보다도 수입이 적었다”며 “덜 성숙된 상태에서 급속냉동을 했다가 1억5000만원어치의 감을 그냥 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이스 홍시사업은 이런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난 98년부터 정상 궤도에 올랐고,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전국 감 수확량의 20%(1위)를 차지하고 있는 청도감은 씨가 없고 당도가 높으며 수분이 많은 것이 특징. 곶감으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홍시로 익혀 먹기에는 그만이다. 하지만 곶감이 보관기관이 길어 판매 루트를 다양화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홍시는 제한된 시간 안에 팔지 못하면 폐기 처분하는 수밖에 없다.

매년 홍수 출하로 감값 하락 파동을 겪던 청도 주민들은 “홍시를 오랜 기간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보자”며 아이디어를 짜냈고, 이 노력의 결과 갖가지 감 가공제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15년째 감 농사를 짓고 있는 박성길(58)씨는 “매년 감 가격파동에다 FTA 체결로 이젠 겨울 동안 남미의 값싼 생과일들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손 털고 청도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술 개발로 더 맛있고 품질 좋은 과일을 생산해 정면 승부해내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도 농민들이 개발해낸 감 가공품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감말랭이. 감말랭이는 감의 꼭지를 떼고 열십자로 잘라 4조각 내 말린 것. 당도가 높고 말랑하며 크기가 작아 한입에 털어넣기 좋다.

감말랭이는 2000년 한 농민이 “청도 반시를 곶감으로 만들어 보려다가 잘 안되기에 씨가 없는 장점을 살려 여러 조각 내서 말려봤더니 존득존득한 것이 맛이 기가 막히다”며 군청의 조기동 과수전문가에게 상의한 것이 개발의 단초가 됐다.

조씨를 비롯한 농업기술원 직원들은 감 농가들과 함께 군청 건물 옆에 50평 남짓한 실험용 비닐하우스를 지어놓고 24시간 감말랭이 연구에 들어갔다. 말랭이 조각의 개수부터 익히는 정도, 보관과정 등에 변화를 주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4조각을 낸 지금의 감말랭이가 나왔다.

군청에 따르면 올해로 3년째를 맞는 감말랭이 생산에는 현재 6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해 40여 농가가 생산한 총 86t(14억원)의 감말랭이는 3개월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부가가치도 높아 생감 한 상자인 15㎏(1만원)을 감말랭이 3㎏(3만원)으로 가공하면 가격은 3배로 뛰게 된다.

감말랭이 개발에 앞장서온 청도군 매전면 청매농산의 노필태(여·45)씨는 “예전엔 감이 한꺼번에 출하되면서 가격이 폭락해 애써 키워낸 감들을 그냥 썩혀 버리기도 했다”며 “감말랭이를 만들고부터는 가을철마다 주렁주렁 달리는 감들을 보고 한숨 대신 소리내 웃는다”고 말했다.

청도군은 “2010년에는 청도감 생산량의 50%를 감말랭이로 가공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현재 240억원 정도의 농가 수입이 500억원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감말랭이와 아이스 홍시 말고도 청도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개발한 감가루와 밀가루를 배합해 만든 감 카스테라는 현재 특허가 출원된 상태이며, 최근 생산하기 시작한 감 와인, 감선식, 감장아찌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김재식 교수는 “가공품의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 아이스 홍시나 감말랭이뿐 아니라 연중판매 가능한 감술이나 감주스 등도 개발해 대량 판매할 필요가 있다”며 “또 시장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체계적인 유통조직도 갖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