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익 前서울대 총장

19일 세상을 떠난 고병익(高柄翊) 전 서울대 총장은 광복 후 교육받은 역사학자로 동양사학계의 거인이었으며, 폭 넓은 사회 활동을 펼친 우리 사회의 원로였다.

역사학자로서 고병익 박사가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분야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전통, 그 상호 관계와 교류, 그리고 근대 이후의 변화상이었다. 동양사를 하려면 언어가 무기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일본어와 중국어는 물론 독일어 영어에 능했다.

‘동아교섭사(東亞交涉史)의 연구’(1970) ‘동아시아의 전통과 근대사’(1984) ‘동아시아의 전통과 변용’(1996) 등 저서는 그의 학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아교섭사의 연구’는 당시까지 중국에 머물던 우리 동양사학의 연구 대상을 일본과 중앙아시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전체로 넓힌 역저로 평가되며, 그에게 학술원상 저작상을 안겨주었다.

고 박사는 서울대 문리대 학장(1970~74) 부총장(1977~1979)을 거쳐, 79~80년 유신체제가 무너지고 제5공화국이 들어서던 격동기에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 학내외의 격동을 온 몸으로 겪었던 그는 캠퍼스 분위기가 살벌하던 시절에도 잔디밭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네 “나오라”고 할 수 있는 총장이었다.

고 박사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1980~82)을 거쳐 1982년 한림대 교수로 학계로 돌아왔다. 그는 방송위원장(1991~93년)이란 중책을 맡아 방송 정책을 총괄하면서 남다른 조정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고 박사는 휘문고를 졸업한 후 1943년 도쿄(東京)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가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광복 이듬해 서울대 사학과에 들어가 1947년 제1회로 졸업한 그의 동기생으로 이기백(李基白)·전해종(全海宗) 전 서강대 교수 등이 있다. 독일 뮌헨대에 유학, 동양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2년부터 모교인 서울대 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교육에 몰두했다.

고 박사는 문화재와 고전 업무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1997년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원장을 맡은데 이어 우리나라 문화재 분야의 최고 권위 기구인 문화재위원회 위원장(1997~2001), 국제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장(1999~2001)등도 역임했다. 또 1994년부터 한국 고전 국역(國譯)을 담당하는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을 맡아왔다.

고병익 박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학문을 놓지 않았다. 작고하기 직전까지 평생 연구 성과를 정리한 400쪽이 넘는 영어논문집 ‘동아시아 문화전통과 역사(Essays on East Asian Cultural Tradition and History)’를 탈고하고 색인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제자인 서울대 동양사학과 김용덕(金容德) 교수는 “고 박사는 역사학이 상아탑 속에 갇혀 있지 말고 대중과 함께하며 사회적 요청에도 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