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3600여명의 이라크 차출은 이라크전의 상황 급변에 따른 미군의 전력 공백을 메우는 단기적 처방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관계가 순탄치 않은 미묘한 타이밍에서 내려진 이번 결정으로 인해 한·미 안보협력이 균열로 갈 것인지, 아니면 원만히 조정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감축은 미국의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Global Posture Review·GPR)’의 일환으로 다뤄져 왔다. 이는 동맹의 효율성과 전략적 융통성을 가지기 위해 미국이 시도하는 전략적 변화이다. 그러나 한·미관계의 전반적 분위기와 맞물려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2월에 미국의 ‘디펜스뉴스’지는 주한미군 병력 재조정 및 기지 이전을 상당 기간 검토해 왔다고 보도했었다. 그후 미국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주한미군 감축설은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 변화는 단순히 주한미군의 재조정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한·미 양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한·미동맹의 근본까지도 거론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즉, 현재의 GPR을 바탕으로 한 변화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대외전략에 관해 극심한 논쟁에 빠져 있다. 이라크전을 계기로 미국 내의 여론은 둘로 완전히 갈라져 있으며 행정부 내에서도 강온파의 대립은 극심하며, 이것이 미국 전략의 가변성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이 놓인 전략적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한·미동맹이 긴요한 것이기는 하나 적어도 “전략적 재조정”이 얼마든지 가능한 대상이 되었다. 이는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 동맹구조를 급격히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한·미 간의 오랜 암묵적 대전제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동아시아에 가장 강력한 두 국가인 중국 및 일본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가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향후의 ‘전략적 허브’로 생각하고 있고, 일본의 고이즈미 내각도 주요한 위협이 사라졌음에도 미국과의 안보 증진을 강화하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지도부는 중국을 세계 시장경제체제에 더욱 완벽하게 진입시키도록 애쓰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동북아 상황은 미국이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내부에선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주한미군의 감축뿐만 아니라 한·미동맹 자체에 대한 찬반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미관계를 어떠한 동맹관계로 가져가느냐는 큰 숙제이다.
한·미동맹을 기존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동맹에서 동등한 관계의 민주주의 국가가 서로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바탕으로 한 ‘민주동맹’으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러한 동맹이 오히려 과거의 동맹보다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현재 한국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어떻게 수렴해 나갈지가 가장 큰 난관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으로 인한 적지 않은 갈등을 겪어 왔다. 그러나 이런 내부 갈등에 한·미관계를 끌어들여선 한·미관계의 미래가 어두워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미관계의 미래는 어떤 가치관과비전에 근거해 주한미군의 감축을 포함한 한·미동맹 관계를 재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