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戰時) 상황은 악화되기 마련이다. 악화에는 적어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물리적으로 무기가 점점 더 치명적이 되면서 전장의 인명 피해가 예상보다 더 커지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솜므전투에서 기관총과 철조망이 끼친 영향을 생각해보라. 당시 영국군은 공격 첫날 6만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또 2차대전 때의 전략 폭격이 어떻게 진화해 갔는지를 생각해 보라.
두 번째 유형은 훨씬 혼란스런 것으로, 도덕적 기준의 저하다. 헤이그 조약이나 제네바 협정의 무시, 포로와 민간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 주민 강제 추방, 종족·종교 집단에 대한 대량학살 등이 그것이다.
슬프게도 부시 정부와, 또 이들이 바그다드로 진군하도록 부추긴 네오콘(신보수주의) 지식인들의 지도급 인사 중 그 누구라도 이라크전이 나름의 악화 경로를 걷게 될 거라는 사실을 감안했는지 의문이다. 많은 군 장성들은 이라크에서 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후세인 축출보다 훨씬 더 힘들고, 도심 시가전은 더 두려운 것이며, 사상자 또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체니·럼즈펠드·울포위츠 팀은 전문가들에게 귀 기울일 의사가 없었다.
보다 무시무시한 두 번째 유형의 악화 양상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전해진 아부 그레이브 감옥의 참상 말이다. 이것은 세계를 격분시켰고 많은 미국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미국민들은 자국군에 대해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존중심을 갖고 있었다. 베트남에서의 실패 이후 군은 전투력뿐만 아니라 기율과 행동 수칙면에서도 훨씬 전문화된 것으로 비쳐져 왔다.
그동안 미국 내 여론은 낙관적인 메시지에 길들여져 왔고,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전쟁사의 교훈, 즉 대부분의 전쟁은 무장 능력과 상관없이 사태가 좋아지기보다는 악화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외면해 왔다.
첫 번째 유형의 악화와 함께 피해가 늘고, 젊은 병사들의 희생과 좌절감이 커지는 가운데 두 번째 유형의 악화가 10일 전이 아닌 지난해에 이미 시작되었다. 싸움에 지치고, 약속된 귀향도 이뤄지지 않아 격앙돼 있었으며,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던 일부 미군 부대는 포로들을 거칠게 대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군 교도소 경비부대의 행동이었다.
전쟁은 지옥이다. 클라우제비츠가 그토록 자주 경고했듯이 그것은 계획대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다. 이것이야말로 네오콘 전략가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군의 고위 지휘관들은 전후 상황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들도 전쟁에 있어서 도덕적인 악화는 내다보지 못했다. 중간층 장교들 또한 휘하 병사들에게 끈기와 강인함을 강조하는 데만 골몰한 나머지, 때때로 전쟁의 수칙을 강조하는 것을 잊었다.
이 같은 행동 양태의 악화에 따른, 의도되지 않은 비극적인 결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됐고, 영국·호주·폴란드·이탈리아 등 다른 동맹국들도 진흙탕 속으로 끌어들였다. 지금에서야 미국은 유엔(바로 딕 체니 부통령과 그 일당이 지난해까지 도외시했던 그 조직)에 도움을 청하고 있지만, 즉각적인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힘 있고 존경받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 수렁을 헤쳐 나올 수 있게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무엇 때문에 지금 국면에서 중국이나 프랑스가 미국을 지원하고 나서겠는가? 뭣하러 인도가 미국이 바람 속에서 비틀대고 있는 상황에 같이 끼어들겠는가?
미국민들로서는 어떻게 하면 이 뻔뻔스럽고 소름 끼치는 포로 학대 소식을 접하고도 자국의 이념과 문화적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자신들의 나라야말로 ‘언덕 위의 도시’, 즉 다른 나라에는 빛이자 민주주의·인권의 선구자라고 믿어온 이들이 아닌가? 젊은 여군 신병이 벌거벗은 이라크인을 개 끈으로 묶어놓고 있는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모든 자기 과신은 산산조각이 났고 심지어 미국 정부 내에서조차 (이라크에서의) 후퇴와 포기에 대한 중얼거림이 늘어나고 있다. 전쟁이란 일단 시작되면 결코 통제할 수 없다.
(폴 케네디·예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