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지난 2개월여의 통치권 공백상태가 끝났다. 탄핵 기간 나라는 성숙된 민간 역량으로 지탱돼 왔으나 국가 비상 사태에 대비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였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국민의 다수 여론을 거스른 국회의 탄핵 소추가 무리한 것이었음을 사법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탄핵 소추는 정치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이 승리한 지난 4·15 총선 결과를 통해 이미 ‘기각’ 쪽으로 심판이 내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1년 동안 빚어졌던 국정 혼선·혼란, 여·야의 극한 정쟁(政爭)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다. 물론 이 탄핵 기각이 더 심각한 국가 분열과 대치를 부를 수 있는 위험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날 여·야는 일단 ‘상생(相生)의 정치’라는 말로 탄핵 기각의 첫날을 시작했다. 정쟁에 극단적인 혐오감을 표시하고 있는 국민을 의식한 것이다. 따라서 탄핵 정국은 여야 정치권에 새로운 경쟁의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고, 정치권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헌재의 탄핵 기각으로 노 대통령은 집권 2기를 시작했다. 집권 1기에 비해 정치적으로 훨씬 힘이 강한 대통령이다. 국회 과반수를 장악한 노 대통령은 개혁 아젠다를 뜻대로 추진할 수 있게 됐으며 앞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은 집권 2기는 ‘위임 통치’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정치는 당에, 내치(內治)는 내각에 상당 부분 위임하고 자신은 특정 과제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먼저 진용 갖추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1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결론나는 대로 이날 비서실 개편 및 후속인사까지도 마무리 짓는다는 방침이다. 정무수석, 참여혁신수석은 폐지되고 사회정책수석, 시민사회수석이 신설되는 내용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6월 5일 17대 국회가 개원되는 대로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지사를 다음 총리로 지명하고, 국회의 인준이 끝나는 대로 5~7개 부처 장관을 바꿀 예정이다. 6월 말로 예상되는 개각 때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 김근태(金槿泰) 전 원내대표가 입각, ‘차기 수업’을 한다.
노 대통령은 진용이 갖춰지면 김혁규 총리 및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금융 및 재정), 안병영(安秉永) 교육부총리(교육과 사회), 오명(吳明) 과기부장관(부총리 승격 추진·산업 및 과학기술) 등 4인 중심으로 내각을 위임 운영한다는 것이 여권 핵심인사들의 설명이다. 청와대측은 이를 ‘네트워크형 협치(協治)’라고 말하고 있다.
국내 정치는 열린우리당에 힘을 실어준다는 방침이나, 문희상(文喜相) 전 비서실장을 당과의 ‘창구’로 지명했고, 청와대 박봉흠(朴奉欽) 정책실장이 당정채널을 통해 정책주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이 하려는 일 중에 여야가 부딪칠 사안이 적지 않은데, 노 대통령은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당에 대한 힘과 영향력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0일을 전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예정이다.
한 핵심참모는 향후 노 대통령의 2대 관심사항으로 노동문제 및 공직부패 척결을 꼽았다. 노동문제는, 현안이 되어 있는 비정규직근로자 문제를 해소하는 한편 노동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관련법 개정이다. 노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직접 나설 생각도 있다 한다. 청와대측은 공직 사정(司正)과 관련해서는 이번에 군(軍)이 문제된 것처럼 성역화된 부패는 척결하지만 일반 공직 사정은 계획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핵심 참모들은 노 대통령이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이념논쟁의 시대는 갔으며 무엇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21일 대기업 총수 및 CEO 20여명을 만날 예정이며, 그 다음주에는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만난다. 이는 물론 투자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목표를 둔 행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