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어느 날 재야의 원로인 이해동 목사가 서울 강남의 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1980년 ‘5·18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 고은 시인,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이해찬 의원 등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인사들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청구하기로 하고 마땅한 변호사를 찾던 중이었다.
이 목사 등은 “5·18은 5·17쿠데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논리를 편 이 변호사의 책을 보고 “바로 우리가 찾던 사람”이라며 손뼉을 쳤다고 한다. 책 제목은 ‘끝나지 않은 5·18’이었다.
이 변호사는 몇 마디 듣자마자 흔쾌히 “제가 무료로 사건을 맡겠다”고 했고, 3년여 재판 끝에 2001년 1월 관련 인사 전원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변호사가 열린우리당 최재천 당선자(서울 성동갑)이다. 그는 광주일고 2학년 때 5·18을 현장에서 겪었다. 옆에서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봤고, 계엄군이 겨누는 총구 앞에 서기도 했다.
5·18에 대한 책을 쓴 것도 1997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5·18 인권보고서’를 만들 때 “광주 사람인 내가 정리하겠다”고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폐암 환자를 대신해 ‘담배 소송’을 국내 처음으로 냈던 의료사고 전문 변호사이고, 방송의 생활법률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02년 대선 전 ‘병풍’ 사건 당시 병역조작 관련 녹음테이프 등을 공개했던 김대업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이제 남은 시대적 과제는 남북 통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통일외교통상위를 지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