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세기 최대의 철학적 라이벌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를 대비시킨다. 두 사람의 관계가 계승이냐 극복이냐 혹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느냐를 놓고 세계 철학계가 지루한 논쟁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 철학계는 이제 이 두 거대한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더듬기 수준의 파악을 막 끝내고 조금씩 연구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이 활약했던 게 20세기 초이고 보면 대략 100년의 시차가 있다. 서양의 두 사상적 봉우리를 오를 수 있는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는 데만 거의 한 세기를 쏟아부은 셈이다.
후설과 하이데거에 관한 한 정복해야 할 봉우리가 하나 둘이 아니다. 후설의 경우 1950년대부터 펴내기 시작한 전집 발간 작업이 아직도 1년에 한 권 정도씩 나올 만큼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보다 빨리 자신의 ‘현상학적 사유’를 담아낼 욕심에서 속기로 집필해 놓았으니 전집 발간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의 반 타의 반 말년을 칩거해야 했던 하이데거의 유고(遺稿)도 만만치 않아 지금도 잊어버릴 만하면 한 권씩 나오는 바람에 그의 사상에 관한 기존의 학설들이 뒤바뀌곤 한다.
이남인 교수(서울대 철학과)의 이번 작업이 국제 학계와 한국 학계의 학문적 격차를 줄이는 업적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그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스승이었던 부퍼탈대 클라우스 헬트 교수와의 인연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독일 현상학회장을 지낸 헬트 교수는 이미 1974년부터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아 후설과 하이데거의 텍스트를 정밀하게 읽고 분석하는 ‘현상학 콜로키움’을 이끌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던 학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도 유학 시절 이 콜로키움에 참여했다.
제1장은 후설의 현상학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현상학을 몰라도 철학의 기초 개념과 20세기 초반 서양철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저자는 후설의 현상학을 초·중기와 후기로 나눈다. 제2장은 초·중기, 즉 후설 자신이 ‘정적(靜的) 현상학’이라고 불렀던 것의 핵심 내용을 풀이한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한국 현상학은 바로 이 시기의 현상학에 대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더듬기를 해왔는지 모른다. 여기까지가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안내인데 이것만으로도 국내외 어떤 입문서를 능가하는 성취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후설의 초·중기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에서 전개되는 해석학적 현상학을 비교한다. 그동안 두 거인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던 지점이다. 하이데거 본인을 비롯해 다수의 학자들은 이로써 하이데거가 스승 후설을 넘어섰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남인 교수는 “하이데거가 그 같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후설도 정적 현상학에서 발생적 현상학으로 나아가 비슷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데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자연스럽게 제4장에서는 후설의 후기 현상학, 즉 ‘발생적 현상학’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발생적 현상학은 부단한 발생 과정 속에 있는 생의 흐름을 분석하고자 한 쇼펜하우어·니체·딜타이·베르그송 등의 생철학, 해석의 발생적 구조를 분석하고자 시도한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 등과 그 근본 이념에 있어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흔히 후설의 의식에만 관심을 쏟고 인간 삶에는 무관심했다고 보는 견해는 오해 내지 무지의 결과라는 것이다.
제5장과 제6장의 취지는 제6장의 제목 ‘초월론적 현상학(후설)과 해석학적 현상학 사이의 대화를 위하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5장에서는 초·중기의 후설과 하이데거를 비교하는 것은 불공정한 게임이며 후기 후설과 하이데거의 싸움이라야 페어 플레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끝으로 저자는 “두 사람 사이에 철학적 대화의 단절이 있었다는 것은 두 사람만의 비극이 아니라 현상학의 발전에도 큰 부담이었다”며 “현상학의 근본 정신인 ‘사태 자체로’ 돌아간다면 후설과 하이데거의 ‘화해’를 넘어 다양한 유형의 현상학들끼리의 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