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2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사과정에 있던 한 한국인 유학생이 ‘노무라연구소’의 연례보고서를 보다가 무릎을 쳤다. 보고서 한국 부문에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왔을 때 난민수용소 위치와 규모 등은 물론, 비치할 구급약 목록까지 적시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철학을 공부하며 뭔가 식상함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이 유학생은 “이런 학문 세계도 있구나”라며 곧바로 세계적인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가 있는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 지원했다. 이 유학생은 1987년 귀국,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에 미래학을 보급하는 데 주력했다. 그가 바로 한나라당 공성진(孔星鎭·51·서울 강남을) 당선자다.
육군 장성의 아들, 경기중고·연세대 졸업, 미국 유학 후 대학교수…. 순탄한 삶을 보낸 것 같지만 젊은 시절 방황의 흔적이 적지 않다. 고교 시절엔 ‘학깡’(학생깡패) 노릇도 했고, 허무주의에 빠져 출가하겠다며 두 달 정도 절에서 지내기도 했다. 연세대에선 응원단장도 했지만 ‘지적 허기’를 채울 수 없어 국내에서 처음 공산주의 이론을 제대로 가르친 ‘자유아카데미’ 1기로 공부하기도 했다.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자유아카데미 1기 동기생.
지난 2001년부터 북악포럼을 열어 매주 한 번씩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토론을 했고, 그 결과를 ‘미래를 여는 창’이란 책으로 내는 등 이 후보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정계와 연을 맺었다. 공 당선자는 “한나라당에서 ‘잃어버린 세대’인 10대 후반, 20~30대를 되찾아오는 역할을 맡겠다”며 “그를 위해 1주일에 한 번은 지역구 내 초·중등학교를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