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도 잘 받았는데 뭐가 무서워.”
대학생 이호(23·광운대 3학년)씨의 걱정에 산악인 허영호(50)씨는 1994년부터 4년간 이씨의 암 치료 시절 얘기를 먼저 꺼냈다.
4일 서울 광장동에 있는 허씨의 사무실. 유럽 최고봉 등정을 위한 출발일을 일주일 앞두고 이들 두 명의 움직임은 바쁘기만 했다. 등산복, 음식 등 필수품 중 빠진 게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느라,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격려 전화에 응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꼭 성공하고 돌아와라” “3만명의 ‘후배’ 백혈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격려 전화에서 “힘들면 중간에 내려와도 된다”는 등.
이씨를 비롯해 백혈병에서 완치된 지 4~5년밖에 안 된 10·20대 청소년들이 오는 12일 유럽 최고봉인 러시아의 엘브루스산 정복에 도전한다. 병마를 극복한 청소년들이 허씨와 함께 만년설 정복에 나선 것이다.
이번 행사가 기획된 것은 작년 12월. 당시 (사)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명예이사였던 허씨는 초등학생을 포함한 백혈병 완치자 19명 전원이 경남 창녕 화왕산(해발 756m) 등반에 성공하자 ‘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허씨는 “백혈병 환자도 완치만 되면 정상인 이상의 체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전국에 있는 백혈병 완치자 중 건강한 사람을 수소문해 이씨를 비롯해 간호사인 박세희(여·20)씨, 검정고시 준비생 이소의(16)양 등 5명이 동참하게 됐다. 길게는 10년 전에서 짧게는 재작년까지 무서운 암세포와 싸웠던 의지의 사람들이다. 박세희씨는 “내가 건강해진 것을 확인도 하고 투병 중인 사람들에게 희망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13일 러시아에 도착, 역시 백혈병을 극복한 러시아인 2명과 함께 3~5일 가량의 고지적응 훈련을 받은 뒤 본격 등반에 나선다. 우선 해발 3800m까지 케이블카로 이동한 후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정상 정복에 나설 예정. 허씨는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 만년설로 뒤덮인 지역이어서 보통 사람도 오르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산은 아직 계룡산밖에 가본 적이 없다”며 “그러나 백혈병 환자도 완치해 정상인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증명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