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53%가 ‘가난은 정치나 사회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2002년 이후 올해로 세 번째 실시된 ‘국민 이념성향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런 견해가 2002년 39.5%에서 2003년 48.5%, 올해 52.9%로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국민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가 31.9%→39.2%→42.8%로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국민의 시각이 급속하게 방향성(方向性)을 갖고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원인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다. 1993~2002년 사이 임금수준을 기준으로 상위 30%와 하위 30%의 직업에선 일자리가 각각 200만개, 119만개 늘어났다. 그러나 중간층 40%의 직업에선 27만개 증가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중간층이 함몰하면서 상하 양쪽 끝만 솟아오른 기형적 사회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중도 퇴직자의 양산과 함께 빈곤층 내에서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우리 사회의 뚜렷한 특징으로 부각되면서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져가고 있다.
빈곤문제에 대한 이 같은 국민 반응에는 충분히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정서를 방치하게 될 경우 경제 발전과 사회적 평화에 치명적 해독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난은 제도 탓, 나라 탓’이란 정서의 바닥에는 ‘내 이웃이 잘살기 때문에 내가 못산다’는 심리가 깔리게 된다. ‘있는 자들로부터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주겠다’는 포퓰리즘 정치의 토양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런 정서가 아직은 극단까지 가지는 않았다. ‘소득 분배보다는 경제 성장에 주력해야 한다’는 데 61%가 동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비탈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이 문제에 손을 써야 할 때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 정치와 한국 경제는 포퓰리즘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근본 처방은 일자리, 그것도 더 많이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사회안전망 확충도 서둘러야 하고, 그러려면 사회안전망 확충이 안전을 위한 비용지불이라는 인식이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