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권력에 이어 국회권력까지 장악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집권 2기 국정 운영 구상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여권 전체가 뭔가 매우 부산한 가운데 개울을 건널 징검다리가 하나씩 놓여지고 있는 느낌이다.
노 대통령부터 선거 이후 이틀에 한 번꼴로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을 청와대에서 만나고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총선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청와대 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에 그만큼 힘이 붙었다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은 앞으로 스타일은 낮게 실용적으로, 그러나 권한 행사는 주저하지 않는 쪽으로 갈 것 같다.
우선 지난 1년식의 돌파형 스타일은 바꿀 것 같다. 문희상(文喜相) 전 비서실장부터 “노 대통령 본인이 실용주의자”라는 말을 하고 있고,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도 비슷하다.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씩 법을 만들고 제도를 고쳐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고, “당선자 개개인이 극좌파이든, 극우파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 당장의 현안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게 중요하지”라는 사람도 있다. 열린우리당 워크숍을 지배한 실용노선과 비슷한 톤이다.
청와대는 대통령과 언론의 접촉 빈도를 줄이고 일정도 대폭 줄여 가급적 전면에 나서지 않는 쪽으로 내부 논의를 정리하고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비판을 고려한 결과다.
국가보안법·정기간행물법 등 갈등이 예상되는 현안들을 노트에만 기록해놓고 당장 힘을 기울이지는 않겠다는 기류도 청와대 내에서 감지된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장악력은 소리나지 않게 커질 것 같다. 적극적 당정협의를 통해 정책주도권을 쥐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노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선대위 간부들과의 만찬에서 이미 그런 뜻을 시사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당권·당직·공천권 등에는 관여치 않겠으나 당의 정책과 노선에는 적극적으로 얘기하겠다고 했다. 채널(문희상 전 실장)까지 이례적으로 지명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말하는 당정분리는 과거처럼 돈과 자리를 갖고 장악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서 “청와대와 정부, 당이라는 여권의 3각 편대가 국정 비전을 공유할 필요가 있고, 그런 차원에서는 적극적으로 얘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과 노선상의 주도권까지 당에 넘길 생각은 없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차원에서 수도이전,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국정과제 및 200여개 국정로드맵을 현실화시키는 데 힘을 모은다는 생각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이런 노 대통령의 포석은 본인이 관여치 않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당직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일단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과 개각이 맞물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임기가 4년이나 남은 대통령의 생각이 여권 전체의 키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부쩍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