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미국의 대(對)이라크·이스라엘 정책에 맹종하는 총리를 ‘깊은 우려’를 갖고 지켜봐왔다. 이제는 우리의 염려를 공개할 수밖에 없는 때다.”

영국의 전직 대사 등 외교관 52명이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연대 서명한 서한을 보내고, 기존 중동정책의 대전환을 공개 촉구했다. 이라크·이스라엘·리비아 등 주로 중동지역 주재 대사 출신인 이들은 “미국의 중동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 “가장 강력한 동맹국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거나, 영국의 지지와 협조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리버 마일스 전(前) 리비아 주재 대사 등 해당 지역에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은 “우리는 이라크와 아랍·이스라엘 사태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영국 BBC방송은 이와 관련, 이들의 견해는 “외교부 내 관리들도 널리 공감하고 있지만, 총리와 외무장관만이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26일 지적했다.

외교관들은 서한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전후(戰後) 이라크 상황에 대한 “실질적인 계획”을 사전에 마련하지 못했으며, 민간인들의 생명을 경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요르단강 서안 내 일부 유대인 정착촌을 고수하겠다는 이스라엘의 계획을 지지했고, 블레어 총리는 이에 사실상 동조했다면서, “이는 해당 지역의 평화 회복을 위한 40여년간의 국제적 노력 원칙들을 포기한 퇴행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우리의 서한은 블레어 총리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 “영국이 아랍·이슬람권의 비난을 받는 미국의 파트너라는 인상을 불식시키고, 의회를 통해 중동정책을 근본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블레어 총리실은 “총리가 합당한 방식으로 이들의 서한에 답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시 미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의 관계에 대한 의견에는 거부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