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확대를 앞두고 최근 몇 년간 세계적인 제조업체들이 서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동유럽으로 공장을 옮기거나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폴란드 투자청에 따르면, 폴란드의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1995년 25억달러에서, 1998년에 95억달러, 2000년에는 100억달러까지 늘었다. 이제 동유럽은 명실공히 ‘유럽의 공장’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제는 세계적 유통업체들까지 ‘가자, 동(東)으로!’를 외치며 동유럽 소비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시내 동북쪽에 위치한 폴루시 쇼핑센터. 미국이나 유럽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쇼핑몰이다. 쇼핑센터 입구에는 차 100여대 이상을 주차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고, 내부에는 독일 최대의 가전 양판점인 메디아 마르크트, 영국의 대형 할인점 테스코 등이 모여 있었다.
양판점 내부는 전 세계 가전 브랜드의 각축장이었다. 가장 잘 팔리는 인기제품인 삼성의 29인치 TV 200여대와 LG의 모니터 60여대가 높다랗게 한 줄로 전시돼 있었다. 진열대에는 그 외에 필립스, 소니, 도시바, 파나소닉, 샤프, 톰슨 등 세계적 브랜드들이 망라되어 있다. 최근 동유럽 사람들의 씀씀이가 늘어나면서 가전 시장은 연 6~8%씩 성장한다.
폴란드도 마찬가지. 서유럽의 대형 유통 브랜드들이 진출하면서 현지 토착 수퍼마켓이나 유통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최근 세계 2위이자 유럽 1위의 유통업체인 프랑스계 까르푸가 폴란드의 하이퍼마켓 두 곳을 인수했다. 이로써 까르푸는 폴란드 내에 15개 하이퍼마켓과 64개 수퍼마켓 체인망을 갖췄다.
전 세계 브랜드가 쏟아져 들어오고 서구식 쇼핑공간이 생겨나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생활상에 동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폴란드의 직장 여성 아그네스카 몬체프스카씨는 “10년 전만 해도 가게에 사탕이나 초콜릿, 운동화 같은 생필품조차 부족해 못 샀는데…”라면서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해 주던 과거에 비해 지금의 급속한 변화가 두려운 면도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EU 확대를 계기로 몰려드는 외국 기업을 놓고, 동유럽 국가들 간에 ‘외자 유치 국가대항전’도 뜨겁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를 투자해 기아차 유럽공장을 짓는 프로젝트를 놓고서는 동유럽이 들썩거렸다. 막판까지 폴란드와 슬로바키아가 경합한 끝에, 총리까지 팔 걷어붙이고 나선 슬로바키아가 기아차를 모셔갔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북쪽으로 130㎞ 가량 떨어진 무와바시(市). 이곳에 있는 LG전자 생산법인의 주소는 ‘무와바시 LG거리’다. 지난 1999년 폴란드에 진출한 LG전자 생산법인은 폴란드 내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기업의 하나로 자리잡으면서, 최근에는 영국에 있던 PDP 생산라인을 옮겨왔다.
헝가리도 마찬가지. 헝가리 야스페니사루시(市)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의 주소도 ‘야스페니사루시 삼성광장 1번지’다. 조그만 시골 마을인 야스페니사루가 시로 승격된 것도 삼성전자라는 외국기업 덕에 지역 경제가 안정을 이뤘기 때문. 교리네 자글레디 마르타 시장은 “우리 시민 6000명 중에 600여명이 삼성에서 일하고 있어 어떤 다른 지역보다 실업률이 낮다”며 고마워했다.
이처럼 동유럽 국가들은 거리 이름, 동네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친 기업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폴란드 투자청의 안제이 쉐이나 부청장은 “현재 동유럽 국가들은 수출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외국기업 유치에서 성장 동인을 찾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전력을 다한다”고 말했다.
(바르샤바(폴란드)·부다페스트(헝가리)=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