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사람만큼 고향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 속에도 고향을 기리는 노래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려서 “해는 져서 어두운데~”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제 오늘 뉴스에서 북한 용천역 기차 폭발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용천이라는 두 단어가 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반세기도 전에 이른 새벽 두고 떠나온 고향이다.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던 용천이란 말이 지금 가슴 속에서 왈칵 되살아난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전하는 참사 소식에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옆집 소먹이네 코 흘리던 친구들, 두꺼비 등 같은 손으로 쇠죽을 끓이던 아주머니, 늘상 딸들에게 쓸모없는 에미나이들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아저씨가 떠오른다. 아마도 이번에 당한 사람들은 그분의 손자 손녀가 아니겠는가. 교실에서 공부하던 초등학생들이 졸지에 날벼락을 맞았고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도 압사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집안에 있던 식구들에게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겠는가.
신문에 난 지도를 보며 친척 어른들께 전화를 했다. 우리가 살 적에는 용천군은 있어도 용천이란 동네는 없었는데, 폭발 사고가 난 용천은 어디인지. 그렇잖아도 용천 사람들끼리 전화하고 난리가 났단다. 우리 살던 곳은 북중면인데, 지도에 보니 사고 지점 바로 아래가 북중이다. 우리 살던 곳에서 5리쯤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망자만 160명이 넘고 1000명 넘게 다쳤을 거라니, 그 많은 아까운 인명이 속수무책으로 스러져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의약품도, 의료 시설도 태부족이고, 재난 대처 시설도 변변찮다는데, 한마디로 절박한 상황이고 도움은 또 얼마나 절실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무슨 문제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직한 태도가 첫째다. 그리고 자신을 열어야 한다. 그 열린 손길을 따뜻한 손길로 잡아주어야 한다. 다행히도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북의 즉각적인 요청이 있었고, 또 그 손을 잡아주는 손길들이 국내뿐 아니라 국제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사회가 지역주의로 때 묻었기 때문에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은 그동안 순수성을 잃었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마음만큼 순수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모두 고향을 돕는 마음으로, 이번에 말할 수 없는 참사를 겪은 용천을, 북한을 돕자.
인간에 의한 재난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참사는 우리를 한순간이나마 정직하고 순수하게 만든다. 이념과 체제, 국가 의식을 떠나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순간들이다. 우리 민족의 좋은 점은 정 있는 민족이라고 하지 않은가. 따뜻한 정이 있기에, 시끄럽고 번거로워도 또 그 맛에 산다. 이것이 우리의 덕목이고 재산이다. 우린 약간 바람기가 있는 백성이다. 신바람, 무슨 무슨 바람 등 바람이 잦다.
그러나 바람은 멈출 때가 있다. 지금, 용천으로 부는 따뜻한 바람은 쉽게 멈추지 않기를 기대한다. 용천에 식량과 의약품을 보낸다는 데 그 밖에 의료진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또 앞으로 복구사업도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나아가서 용천의 피해를 복구하는 것과 더불어 북녘 사람들에게 마음이 하나 되는 통일의 씨를 뿌리자.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북녘 동포들이 아픔을 딛고 희망을 채우게 되면 그것이 이번 참사를 딛고 얻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장상(張裳) 이화여대 前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