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정박한‘클래스 어플로트’학생들이 23일 인근 호텔을 방문, 전시된 조형물을 구경하며 교사 라이언(가운데)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br> <a href=mailto:hschung@chosun.com><font color=#000000>/ 정한식기자<

지난 22일 오전 인천항에 낡은 대형범선 한 척이 닻을 내렸다. ‘콩코디아’라는 이름의 배에서 내린 이들은 캐나다·미국·영국 출신 고등학생들 39명. 오랜 선상(船上)생활로 검게 그을린 얼굴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처음 접한 한국의 풍경이 신기한 듯 쉼없이 재잘거렸다. 이들은 놀랍게도 ‘여행’을 온 게 아니라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캐나다의 몬트리올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해양학교 ‘클래스 어플로트’(Class Afloat: 물에 떠다니는 교실). 이 바다 위의 학교가 한국을 방문한 건 처음이다. 16~19세 남녀 학생들은 작년 8월부터 중국 인도네시아 등 15개국을 돌았으며 6월까지 모두 20여 개국을 돈다. 배 위에서 정규교과를 수업하고 공동체 생활을 익히며 각 나라에서 현장 학습을 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캐나다 출신 브레트(17)군은 “한국역사에 관심이 많다. 5일 동안 판문점·비무장지대·가평(한국전 때 캐나다 군인들의 격전지) 등을 방문한다고 해 기대된다”고 쾌활하게 대답했다.

이 선상학교는 퀘백 주정부의 인가를 받은 정식 교육기관으로, 대학 진학 때도 학점을 인정받는다. 92년 이래 해마다 지원자가 늘어나지만 성적·수영능력·인성 등을 엄격히 평가, 선발해 한 해 50여명만이 배에 오를 수 있다.

이 배에 탄 학생들의 교육과 생활을 책임지는 이는 존 사우스필드(45) 박사다. 12년 동안 거의 쉬지 않았다는 그는 “청소년 교육은 지식보다 품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청소·요리·페인트칠 등 각자 맡은 일도 완수해야 합니다. 부모의 보호 없이 고생하는 거죠. 하지만 배에서 내리고 나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훌쩍 자라 있는지 몰라요.”

음주나 약물복용 등 규율을 어기고 공동생활에 피해를 줄 땐 가차없이 돌려보낸다. 이번 학기에만 3명이 중도탈락했다. 단, 학생들이 집에 가고 싶어 울 때는 “바다에 뛰어내리든지 맘대로 하라”며 스스로 안정을 찾을 때까지 내버려 둔다고 한다.

생물과 지리를 가르치는 라이언(34)씨는 “학생들의 부모·카운셀러·간호사가 되어줘야 하기 때문에 교사로서도 한층 성숙하는 느낌”이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역사교사 케이트(28)씨는 “이 배에선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교과서”라며 “현대사에서 냉전을 설명한 뒤 베트남이나 한국의 전쟁터를 찾으면 효과가 크다. 다음엔 히로시마와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캐나다 유학 중이던 97~98년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한국계 사라 김(24)씨는 그때 동고동락한 친구들의 동생들이 온다는 소식에 인천으로 달려왔다. “중간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강권으로 1년을 탔죠. 졸업식 때는 ‘내가 앞으로 뭔들 못하랴’는 생각이 들더군요.”

존 박사는 “세계를 경험하며 인내심과 독립심을 배운 아이들이 진짜 글로벌 리더가 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