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4·15 총선 승리 직후 ‘당 개편·혁신’ 작업을 설명하면서 “최소한 20~30년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최소한 한 세기는 갈 수 있는 영속적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 4·15 총선 과반 의석 확보로 이어지는 현 집권측의 승리가 일과적(一過的)인 것이 아닌 ‘장기적 집권 구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주요 인사들은 그간 여러 차례 이 같은 구상과 포부를 밝혔다.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씨가 지난해 “이 땅의 50년 주류세력을 바꾸겠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여권 관계자들은 보수가 40년 집권했다면, 개혁·진보가 20~30년 집권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본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이 시대적 개혁 과제를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 친여 인구층 형성·증대
이 같은 여권의 장기 구상이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갖고 있는지를 판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김부겸 당선자는 “열린우리당은 아직도 많은 단련의 시간과 국민적 신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장기 집권 구상이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우선 유권자 인구 구성이 여권에 유리하다. 친여 성향인 ‘386세대’는 전례없는 동질적 유권자군(群)이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30%에 가깝다. 그 다음 세대인 20대 후반~30대 초반 연령층의 여권 지지 현상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 전망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지금 한국의 40대 이하 유권자층은 진보세력이 도덕적 우위를 가진 상태에서 정치화된 세대”라며 “진보 진영이 정치·경제적으로 파탄하지 않는 한 쉽게 그 지지 성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들을 일정한 정치적 동일체인 ‘코호트(cohort)’에 가깝다고 했다. 이 같은 코호트 현상의 대표적 예가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만들어낸 ‘루스벨트 연대(FDR Coalition)’다. 근로계층과 여성·소수인종 등이 핵심을 이룬 이 연대에 힘입어 미국 민주당은 약 60년 가까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할 수 있었다.
◆ 압도적 친여 문화 인프라
열린우리당이 대표하는 ‘개혁·진보 진영’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문화 인프라’도 강점이다. ‘100만 기간당원 추진단’ 단장을 맡은 열린우리당 김성호 의원은 “우리당의 힘은 대중, 특히 한국 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는 세대와 문화적인 공감대가 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보 진영의 득세는 출판·영화·대중음악·인터넷 등으로 상징되는 문화권력을 먼저 장악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 전교조 세대의 증가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인 김영희씨는 최근 한 강연에서 “지금 시중에는 열린우리당이 20년 정도 장기집권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며 “이는 전교조 때문이고, 전교조가 가르친 아이들이 사회로 배출되는 시기를 따지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지금 젊은 세대의 역사관과 세계관이 기성 세대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에 전교조 교사들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은 이미 나와 있다.
◆ 보수 진영의 무기력증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이 무기력증을 보이는 것도 현 여권이 20~30년 집권 구상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열린우리당 이종걸 당선자는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보수 지지층은 건재하다’는 식으로 아직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 같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이념적으로 경쟁하며 정치 지형을 나누는 구도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