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병이 링거병을 대신하고, 붕대가 없어 급한 구급환자가 들어오면 의사가 가운을 찢어 동여맵니다. 심지어 주사놓을 때 쓰는 약솜도 재생해서 썼지요. 북한의 병원은 19세기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대규모 열차 폭발사고가 발생한 북한 용천역에서 불과 8km가량 떨어진 신의주시 낙원기계연합기업소 병원에서 30년간 의사로 일한 김재원(66)씨가 전한 북한 의료 현실이다. 그는 북한 의료상황은 한마디로 파산상태라고 했다. 응급환자 수술 도중 전기가 나가는 일은 다반사다. 전신마취에 필요한 약이 없어 목 수술을 국소 마취만 하고 시술하기도 한다. X-레이는 필름이 없어 제대로 찍지 못한 지 오래됐다. 기본적인 약품 부족현상도 심각하다.

평양임상병원 등에서 30년 의사생활을 했던 김찬숙(여·73)씨는 “약품 부족이 심해지자 의사 한 사람이 처방할 수 있는 항생제량을 미리 정해 놓는다”며 “항생제 한 대만 맞으면 살 수 있는 환자가 그냥 죽어가는 것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결핵환자를 돕고 있는 유진벨재단의 인요한 박사는 “북의 환자들은 약에 대한 내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약을 조금만 써도 치료효과가 좋은데 약품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약품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의료도구인 체온계와 청진기, 약솜, 붕대 등도 부족하다. 일부 병원은 붕대로 쓰기 위해 병원 뒤뜰에서 목화를 키우기도 한다. 주사기나 약솜 등 일회용 의료기기도 대부분 재생해 쓴다. 의료기구에 의한 2차 감염이 심각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비교적 상황이 좋다는 평양시내 병원도 기초 의약품이 없어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평양 고려중앙병원에 근무했던 석영환(40)씨는 “90년대 들면서 양약이 부족해지자 양의사도 고려의학(한의학)을 배우게 하고 직접 한약을 조제할 수 있도록 했다”며 “모든 의사들에게 약초채취 할당량이 주어져 의사가 직접 산과 들로 약초캐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 혜택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테라마이신’이라는 항생제는 12알 포장에 공식 가격은 1원50전이지만, 이 가격에 약을 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암시장에 가면 살 수 있지만 10배 이상인 15~20원을 줘야 한다. 탈북의사들에 따르면 ‘간부진료권’을 내미는 특권층과 부유층만이 그나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또 약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형 사고에 대한 구호는 꿈도 꾸기 힘든 형편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윤구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이번 사고로 화상당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우리 쪽에서 골절이나 화상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진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