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진보와 보수세력 간의 갈등을 이념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다. 이런 해석은 진보쪽보다는 보수쪽 사람들에게서 훨씬 강했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김정일 추종자’라는 표현으로 공격했고, 총선 후에는 마치 좌파정권이 들어선 듯한 해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집권 세력의 등장을 이념적으로 온 나라가 좌향좌(左向左)했다고 해석하기에는 적지 않은 허점이 있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중심 인물 중 상당수가 학창시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중 다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그리고 한국 경제의 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직접 만들고 겪으면서 어설픈 환상을 버렸다.
만약 이념적인 진보그룹에 정권이 넘어갔다는 보수쪽의 해석이 맞는다면, 다수의 국민들은 김정일의 1~2촌쯤 되는 세력에게 정권을 위탁해버린 셈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동경하고 선망할 만큼 머리가 돌지 않았다.
적절한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덕분에 찌든 가난에서 벗어났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회사와 상품을 몇 개씩 보유할 만큼 한국경제가 컸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런 국민이 이념적 좌파정권을 선택했다고 볼 수는 없으며, 단지 대안(代案)세력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진보세력이 국정주도권을 쥐게 된 배경에는 이념적인 이유보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진하게 깔려 있다. IMF외환위기 이후 지난 5년 사이 세계화 물결과 시장경제 정책 추진의 부작용으로 승자(勝者)가 모든 것을 챙겨가는 현상(winner-take-all)이 심화됐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낙오자 그룹이 탄생하고 말았다. 특히 99년도 일시적인 호황국면후 다시 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명퇴자, 이태백, 비정규직 근로자, 신용불량자가 대량 생산됐다.
이 패배자 집단이야말로 ‘이 세상 한번 뒤집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간부가 ‘50년 묵은 불판’을 갈아야 한다고 판갈이 유세전을 펼친 논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전쟁터에서는 언제나 승자와 패자가 갈리지만, 지금 우리의 문제는 ‘소수의 승자’만이 살아남았고, 승자와 패자 간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계에서는 삼성과 몇몇 그룹만 독주하고, 대학에서는 소수의 명문대학이 신입생과 편입생을 흡수해버리고 있다. 방송계에서 3개 지상파 방송사들과 케이블TV나 위성방송 채널들 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가고 있다.
많은 분야에서 행복한 소수 바로 옆에 불행한 다수가 웅성거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패배자 그룹은 승자를 향해 욕하고 저항한다. 학생을 빼앗기는 지방대에서는 은근히 서울대와 연·고대가 몰락하기를 기대하고, 갈수록 독자를 잃고 있는 소규모 신문사들은 대형 신문들이 무너지기만을 바란다.
그렇다고 “너희도 열심히 일해서 잘하면 될 거 아니냐”는 식의 설득이 먹혀드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 참에 세상을 바꿔보자는 발상만이 날개를 펴고 있다.
이제 새로운 집권 세력에게는 4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다음 선거 때까지 만약 이런 극단적인 쏠림 현상으로 패배자 그룹을 계속 양산하는 정책을 편다면 현재의 지지자들은 금방 저승사자로 변하고 말 것이다.
더구나 소수의 승자로부터 빼앗아 다수의 패배자들에게 나눠주는 정책을 선택한다면 격렬한 저항과 충돌을 겪게 될 것이다. 지난 5년간 누적된 낙오자 그룹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모두가 승자가 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송희영 출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