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봄이 오면 대학 캠퍼스는 아름답게 변한다. 예쁜 꽃들도 피고 나무에 연초록 잎들이 파릇파릇 돋아나서 기분이 정말 좋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지난 16대 5.9%에서 13%(299명 중 39명)로 껑충 늘어난 엊그제 17대 총선 결과에서 여성 정치의 발전을 보면서 봄을 실감한다.

여성 국회의원 수가 2배로 늘었다. 여성 의원의 많은 의석은 여전히 비례대표 부분(29석)에서 나왔지만, 지역구에서 치열한 격전을 치르고 승리한 여성도 10명이나 된다. 16대 때 지역구 여성 의원이 단 5명이었던 데 비해서 그 역시 2배로 증가한 셈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이 논의되면서 여성들은 비례대표에서 일정 비율을 여성으로 공천해줄 것을 요구했고, 30%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그 30%의 할당이 있었기 때문에 16대에 여성의원이 15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프랑스에서는 선거법을 개정, (남녀)동수조항을 법으로 정했다. 모든 선거에서 여성 후보와 남성 후보를 동수로 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그것을 선례로 삼아 한국 여성계는 지난해부터 17대 총선에 비례대표의 50%, 지역구의 30%를 여성으로 공천하라고 요구했다. 남녀 동수가 안 되면 접수를 할 수 없는 프랑스에 비하면 강제 조항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탄핵 정국으로 총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당·민노당은 비례대표 후보로 여성을 50% 공천했다. 지난해 그 같은 요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정말 그렇게 될까?” 하는 시선과 “여성들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시비가 엇갈렸지만, 개혁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압박이 그 같은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확보되어야 여성 삶의 질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도 강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 2004년 봄 우리 사회에 그만큼 넓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보다는 늦게 왔지만, 긴 겨울이 끝나고 한국의 여성 정치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봄은 겨울이 아니지만 여름도 아니다. 여성의원이 13%로 두 자리 숫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한국 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꿀 의무가 여성 의원들에게만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민들이 여성의원들을 선택한 배경에는 부패와 정쟁으로 얼룩진 기성 남성정치에 대한 혐오가 있을 것이다. 공천과 선거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나온 이야기다. 당선된 여성 의원들은 이런 요구에 부응하여 한국 정치개혁의 선봉에 서기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13%의 여성은 13%일 뿐이다. 13%는 반개혁적 정치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는 숫자이며 친개혁적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없는 숫자이다. 과거 정치권에 수혈된 젊은 피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기존 질서에 동화되어 버렸던 것은 그들의 피가 싱싱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그들이 자신들이 들어간 집단의 성격을 바꿀 만큼 충분히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물질의 기존 성격을 바꿀 수 있는 최소한의 점유율 임계점은 30%라고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번 17대의 13% 여성 의원은 유권자들에게 여성도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으로, 그리고 차세대 여성들에게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큰 일을 해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목마르다.

(김민정·서울시립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