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김종필(78) 총재가 19일 정계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길게는 1970년대 이후, 짧게는 1987년 대선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3김시대’도 함께 막을 내렸다.
김 총재는 이날 당사에서 17대 총선 당선자들을 만나 “국민의 선택은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며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또 “43년간 정계에 몸 담아 왔고, 이제 완전히 연소돼 재가 됐다. 일찌감치 떠날 수도 있었지만 무언가 세워놓고 떠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떠났을 것”이라며 “세상이 옳든 옳지 않든 바뀌었고, 이 나라에 불안요인이 아직 있지만, 시간과 더불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 총재는 이어 "1995년 자민련을 창당할 때 5명이 뭉쳐 시작했다"며 "앞으로 여러분들이 지혜와 용기를 모아 궁극적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총재는 35세 때인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에 가담하며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김 총재는 이어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시작으로 9선 의원, 국무총리 두 번, 민주공화당·신민주공화당·자민련 총재, 87년 대선 출마 등 정치 역정을 겪으며 반 세기 가까이 우리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는 43년 정치 역정 대부분을 ‘2인자’로 보내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그는 국무총리, 집권당 총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끊임없이 1인자의 견제를 당하는 ‘영원한 2인자’였다. 1963년 외유를 떠나며 남긴 ‘자의반 타의반’이란 말도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10·26 이후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에 묶여 11, 12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가 87년 양김씨와 함께 대선에 출마, 정치 전면에 재등장했다. 이어 88년 13대 총선 때 신민주공화당으로 충청권을 석권했지만, 90년 3당합당을 수용하면서 다시 ‘2인자’ 위치로 돌아갔다.
그후 그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에 차례로 기여했지만, 역시 ‘2인자’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번번이 밀려났다. 그가 평생 정치 목표로 추구한 ‘내각제 개헌’도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의 시대는 사실 지난 16대 총선 때 자민련이 17석을 얻는 데 그치면서 종말을 고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내각제 개헌’과 10선 고지에 미련을 갖고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으로 재도전했지만, 끝내 둘 다 달성하지 못한 채 정계를 떠났다.
한때 정치권에서는 그를 중용을 아는 ‘동양정치의 달인’, 글, 글씨, 그림, 노래, 음악, 술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르네상스적 정치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그도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흐름을 버티지 못하고 정계를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