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삼성의료원의 영안실 전면에는 조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형 조각 작품이 하나 서 있다. 재일 설치미술가 최재은의 ‘시간의 방향’이란 작품이다. 높이 13.5m짜리 거대한 원뿔이 비스듬히 기운 형상인데,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지상에 떨어진 푸른 눈물 한 방울이다. 망자(亡者)를 떠나보내는 의식(儀式)의 상징성을 살리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영안실의 우중충한 분위기도 밝게 한다.

서울 삼청동 입구 ‘더 레스토랑’의 경사진 지붕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빨간색 티셔츠의 젊은 여자가 한 명 서 있다. 미국의 세계적 조각가 조너선 보롭스키의 작품 ‘걷는 여자’다. 또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옆에는 느릿느릿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해대는 키 23m 몸무게 7t짜리 초대형 철제 거인이 서 있다. 역시 보롭스키의 ‘망치질 하는 사람’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을 통해 행인들은 잠깐이나마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난다.

환경조형은 1995년 개정된 문예진흥법에 의해 제도화됐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 신축 때 건축비의 1% 가량 조각 또는 그림을 구입해 건물 안팎에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그래서 ‘1% 미술’이라고도 불린다.

이 제도는 성공적 사례도 적지 않게 낳았지만 부정적 지적도 따랐다. 브로커를 낀 몇몇 작가들이 환경조형 작업을 독점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건축주가 이중 계약이나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현상도 잦았다. 여기에 심의위원회의 정실에 얽힌 선정 등이 겹치면서 거리의 흉물을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정부는 건축주가 원할 경우 개별 환경조형물을 설치하지 않는 대신 건축비의 0.5%를 내게 해 기금으로 적립하고 공공미술센터가 이 기금을 관리하며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공공조형물을 설치하도록 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럴듯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공적 조형물이라면 정부 예산으로 해야지 왜 민간에서 돈을 걷겠다는 것이냐는 이야기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관리위원회를 만들어 나눠 먹기 식으로 기금을 운용하고 조형물을 심사한다면 그게 결국 그거 아니냐는 비판인 것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