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9월, 승객 156명을 태운 일본 항공기가 인도 상공에서 납치돼 다카 공항에 강제착륙했다. 범행을 저지른 일본 적군그룹은 일본 국내에 잡혀 있던 적군파 9명과 승객들의 교환을 요구했다. 일본정부는 결국 범인들의 요구에 굴복해 적군파를 석방했고, 인질들의 몸값 600만달러까지 얹어줬다. 당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는 “인명은 지구보다도 무겁다”는 말을 남겼다.
2004년 4월, 이라크에서 3명의 일본인이 납치됐다. 정부 대변인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마침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아들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젊은이를 비롯, 이라크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사지(死地)를 찾은 3명의 목에 테러범이 칼을 들이댔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노 고이즈미!”라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비난하는 소리가 범인들이 보낸 비디오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대응은 냉정했다. 인질 소재도 파악하지 못한 채 현지 언론 보도에 일희일비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자위대를 철수하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원칙만은 지킨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테러범을 비난했기 때문에 인질 석방이 늦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이라크로부터 날아오고, 이탈리아인 인질이 살해되면서 최악의 궁지에 몰렸지만, 결국은 일본이 이겼고, 인질들은 15일 무사히 석방됐다.
지구보다 무겁다던 생명의 무게가 지금 줄어들었을 리는 없다. 미국의 동맹으로 일관해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인명피해를 감수하려 한 일본의 선택이 옳았는지 역시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익이라는 냉정한 틀 앞에는 무고한 양민의 생명조차 가벼워지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최흡특파원 po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