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씨는“시대착오성(진보)과 천민성(보수)의 적대적 의존관계로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김창종기자 cjkim@chosun.com

“많은 ‘386’세대가 이제는 ‘486’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40줄에 접어든 우리 자신을 살펴보니 우리도 이제는 세계관과 가치관에 관한 한 ‘노인 증후’를 두려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일까? ‘한 386의 사상혁명’의 저자 김대호씨는 계속 힘주어 말한다. “만약 386·486들이 민주화와 사회연대성 회복이라는 자랑스런 역사에 도취돼 시대착오성이라는 업보를 보지 못 한다면,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에 도취돼 천민성의 업보를 못 보는 ‘완고한 노인네’와 다를 바 없을 겁니다.”

김대호씨는 10년 가까이 자동차 회사를 다니다 최근 그만두고 컨설팅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서울대 금속공학과 82학번 ‘운동권 학생’이었다. 1년간의 무기정학, 2차례의 징역, 위장취업을 통한 2년간의 공장 생활…. 그러던 1995년 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처럼 ‘별을 단 386’들 수십명을 대우계열사 사무기술직으로 전격 채용했다. 당시 ‘세계경영’을 내건 대우의 사세는 욱일승천하던 때였고, 기존 운동의 좁은 지평을 고민하면서 대의명분에 혹하는 습성이 있던 ‘빵잽이 386’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리고 대우의 성장과 몰락을 모두 지켜봤다. 지극히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던 그 과정에서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와 변칙편법과 전투적 노동운동이라는 현대사의 고농축된 모순이 모두 드러났다. 지난 2001년 출간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의 후속작인 이 책에선 온갖 모순과 대립들이 중첩된 이 시대를, 진보·보수 모두 기존 고정관념을 바꿔야 하는 ‘신(新)전환시대’로 보고 있다.

한 386의 사상혁명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386들은 아직도 반미·반세계화·반시장적 정서와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회역사적 지형과 산업의 발전단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관점이 결여돼 있습니다.” 그가 보기에,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비록 불완전하긴 하지만 그것을 외면해서는 진정한 물질적·문화적 근대화가 영영 어렵게 되는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진보세력이 여전히 이것을 구시대 제국주의의 부활로만 바라보는 한 한국 자본주의의 개혁·개량에 쓸 에너지는 엉뚱한 방향으로 소진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총선 결과가 ‘이미지 정치의 승리’라며 우려했다. 반자본주의와 반세계화를 견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지금으로선 너무나 고답적이고 위험한데도 기존 보수에 대한 환멸에 힘입어 의회에 대거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연대’와 ‘자주’ 같은 멋진 가치를 표방하면서도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기 위해 태양을 붙들어매자’는 식의 시대착오적 비전을 고수해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진보와 보수 모두 세계화의 물결을 수용하고 도덕성을 제고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